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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22:32 (금)
정태는 이것도 싸다는 상인의 말에 불쑥 돈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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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이것도 싸다는 상인의 말에 불쑥 돈을 내밀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07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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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잘 잡히지 않던 것이 어젯밤에 제법 잡았다고 한다. 이번 장이 지나면 다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고 상인은 놓았던 박대를 다시 들어 올렸다.

새끼줄에 매달린 그것은 실제로도 살이 통통하게 쪘다. 눈알은 살아서 물에 놓으면 당장 헤엄쳐서 멀리 달아날 성 싶었다. 싱싱한 바다 내음이 코앞에서 어른거렸다. 간장에 졸여 먹으면 맛있을 것이다.

입안은 벌써 군침으로 가득하다. 군말 없이 장수가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른 정태는 그것을 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그는 도대체 흥정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것도 싸다는 상인의 말 한마디에 불쑥 돈을 내민다. 용순에게 늘 지청구를 얻어먹어도 천성이 남들과 싸다 비싸다를 놓고 벌이는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그는 사는 것은 모두 용순에게 맡겨 놓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용순이 이런저런 이유로 바쁘자 자신이 대신 찬거리를 산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장을 온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가족을 위해 돈을 쓸 때 정태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위한 것은 아끼면서도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시원하게 잘린 머리를 확인하기라도 하듯이 모자를 벗고 뒷머리를 앞으로 쓸어 보았다. 까칠까칠한 감촉이 손을 서늘하게 했다.

이만하면 두어 달은 괜찮을 것이다. 머리 깎는 돈도 아깝다. 그보다는 장에 와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더 그렇다. 이 시간에도 논에 있어야 하고 밭에서 괭이질을 하면서 파면 나오는 잔돌을 고르고 있어야 맞다.

모자를 고쳐 쓰면서 장에 온 목적을 이뤘으니 귀가를 더 미룰 수 없다는 듯이 정태는 장터를 벗어났다. 구경하거나 무엇을 사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발길은 급하게 용곡마을 쪽으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 이것 사라 저것 사라, 하는 장꾼들의 호객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산 사람이 또 무언가를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상인들은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사람이 살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정태의 손에 자기 물건을 하나 들여보내고 싶었던 그들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을 찾아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박대까지 사들었으니 걷는 발걸음은 시원시원하다. 한 시간 후면 그는 논이나 밭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터를 벗어났다 싶었는데 웬일인지 정태는 다시 장으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아까 보았던 삼베 옷에 마음이 쏠렸던 것이다.

요 며칠 전부터 거동이 심상찮은 어머니가 걱정이다. 평생 제대로 옷 한 벌 해 입지 못하고 자식들 때문에 고생만 하고 돌아가시게 된 어머니를 위해 그날만이라도 새 옷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 상의는 두어 차례 용순과 나눈 적이 있다. 가는 마당에 비싼 돈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용순의 조심스러운 거절을 집요하게 달랜 정태는 그것이 사고 싶었다.

오늘이 아니어도 돈이 없지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그런 마음이 들자 정태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어머니의 헌신을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용순에게 한 소리 듣겠지만 이미 용순도 그가 그것을 장만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슬그머니 윗목에 놓으면 마지못해 이해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박대를 손에 쥐어 주고 곧장 일터로 달려가면 될 것이다. 온몸이 땀에 절을 때 까지 땅을 파다 보면 걱정 따윈 어느새 사라지고 나날이 옥토로 변하는 땅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다.

당장 아이들의 해진 옷과 더 시급한 것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나았지만 그래도 효심은 어쩔 수 없이 삼베 쪽으로 눈을 돌리게 했고 그런 실행을 정태는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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