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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을 사기 위해 시장에 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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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을 사기 위해 시장에 온 것이 아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02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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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사고팔 것이 없어도 장에 가는 장돌뱅이가 마을마다 있다. 그들은 종일 장을 돌아다닌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고도 무슨 아쉬움이 남았다고 해가 어둑해질 때까지 갔던 길을 되집어 간다. 하고 많은 날 중에 오늘만 날이라는 듯이 그렇게 하루를 장터에서 보낸다.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무엇을 금방 살 것처럼 했다가 그만두고 돌아섰다고 다시 기웃거린다.

마치 흥정에 실패한 사람처럼 뒷머리를 긁을 때면 그를 지켜본 장터 사람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지만 못 본 척 외면하기도 한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그러려니 한다. 그들은 무엇을 사기 위해 시장에 온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 삼아 온 것이다. 거기다 기대치 않은 어떤 공것을 바라는 마음을 한가득 싣고서 말이다.

그런 사람은 무언가 얻어먹을 것이 없나 여기저기 나다니면서 아는 얼굴이라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척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도 그처럼 살갑게 맞이할까 싶을 정도로 달려든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척하는데 누가 옆에서 보면 굉장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정태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음 지었다. 이 얼마나 보기 좋은 풍경인가. 진흙 펄 속에서 거머리한테 정강이 뜯기는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상대가 꾀병을 부리니 내가 더 일이 고되다고 인상을 쓸 필요가 없다.

여기는 농사짓는 논이 아니고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장터다.

그도 오늘만은 농군이 아닌 손님이다. 옷 차려입고 비록 그것이 낡았더라도 손질해서 깨끗이 빨아 입고 나선 참이니 나도 오늘은 누구한테라고 대접받아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장돌뱅이들은 매번 허탕이다. 운 좋게 얻어걸리는 술은 매우 드물다. 국밥은커녕 호떡 하나라도 이보게 이거나 하나 먹지 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정태는 아까부터 여기저기 기웃대기만 할 뿐 어느 것 하나 사거나 먹거나 하지 못하는 늙수그레한 영감이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사람의 옷 소메를 슬쩍 잡아채면서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있었나 하면서 그보다 더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싶었다.

술은 못하더라도 호떡 하나는 사줄 형편은 된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거나 먼저 알은체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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