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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8 02:35 (목)
그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는 장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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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는 장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01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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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위 형이 혼자 장에 놀러 가다 용곡마을에서 당하고 돌아왔다. 얻어터져 피투성이가 됐다. 더 화나는 것은 호떡을 사 먹으려고 꿍쳐둔 돈까지 뺏겼다.

돈 내놓으라고 길을 막아선 아이들에게 돈 없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한 대 지르고 나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옷을 뒤졌다.

생각했던 돈이 나오지 않자 윗옷과 심지어 팬티 속까지 손을 집어넣었다. 창피한 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들이 신발을 벗기려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형은 그것만은 안된다는 듯이 끝까지 버텼으나 소용없었다. 애들은 그곳에서 동전을 발견했다. 형은 울었으나 그런다고 봐줄 그들이 아니었다. 봐주려고 했다면 애초부터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을 때가 지났어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된 용순이 느티나무 아래서 기다렸으나 영 소식은 없었다. 그녀는 성일을 데리고 장으로 가는 언덕길로 향했다. 밤은 어두워져 있었다.

멀리서 희미한 물체가 보였고 용순은 제대로 확인도 않고 형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다가올 때 성일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고개를 땅에 박고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형이 고개를 들자 용순은 터진 입술 사이로 피가 엉겨 붙은 것을 보고 누가 그랬느냐고 노발대발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용곡마을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마을 사람 중에 유지가 있고 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둘이나 있어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신고해봤자 되레 피해 보는 쪽은 신고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정태는 그 마을 애들이 아닌 둘째 형을 못난 놈이라며 한 대 쥐어박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고 구박을 맞은 형은 다음날에도 뒷간에서 질질 짰다. 아픈 것보다는 호떡 맛을 보지 못한 원통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놀자는 동네 아이들 말에 화색이 돌아 밖으로 달려나갔다.

성일은 그런 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벨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동네 길을 간다는 이유만으로 맞고 돈까지 뺏겼는데 가만히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였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성일은 자신이 크면 그놈들에게 원수 갚겠다고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그러나 성일은 자신이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싸움꾼이 되지 못했다. 늘 울고 짜는 녀석이 어떻게 다른 애들을 때릴 수 있나. 대들었다가 더 험한 꼴당하기 십상이다.

싸움이나 복수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성일은 어떤 요행수가 있으면 몰래 장을 가고 싶었다. 없는 수를 찾으려다 보니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해 졌다.

눈치챈 형은 장 구경 생각이랑 아예 말라는 듯이 그놈들이 어제부로 한 명이 늘어 모두 13명이나 된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꾸며댔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13명을 상대로 자신이 대든 것을 자랑하는 무용담도 끼어 넣었다. 같잖았다. 멋쩍었는지 형은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런다고 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싸울 줄 모르는 그도 동생의 복수 대신 두 번 다시 자신처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상황이 이쯤에서 정리되면 터진 것은 아물면서 끝나야 맞다. 애초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다.

같이 가서 때려 주자거나 다른 아이들을 끌고 와서 혼쭐내자고 하는 대신 내 꼴 나지 말라고 경고를 일삼는 형이 꼴사나웠으나 어쩔 것인가.

용순은 성일이 다른 누구보다도 장날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형에게 틈만 나면 그런 주문을 넣었다. 막내마저 깨지고 오면 동네 망신이었다. 흉보는 손가락질을 용순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일은 언덕에서 용곡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없었으나 어디 숨어 있다가 다가가면 호랑이처럼 나타나는 그들이 두려웠다. 설사 피해서 갔다고 해도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갈 때는 운 좋게 가더라도 올 때는 또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성일은 샛길이 없는 것을 탓했다. 그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는 도저히 장을 오갈 수 없는 지형이었다.

마을을 사이로 양쪽은 산이었다. 산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산을 넘으면 곧바로 논이 나오는데 논이 나오기 전에 마을 길로 이어져 있어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용곡마을로 이사 오고 싶었다. 그러면 뺏기지도 맞지도 않을 것이고 장까지 이십 분이면 갈 수 있다. 죽골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쉬지 않고 말이다.

성일은 하필 이곳에서 사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했다. 면사무소와 한의원과 약국과 과자를 파는 상점과 작은 서점 앞을 매일 지나다니면서 구경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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