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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이 열리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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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이 열리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2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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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이 열렸다. 열린 곳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기차칸으로 들어가듯이 꾸역꾸역 잘도 들어간다.

기다린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다들 서두른다. 앞에서 멈칫 거리면 여지 없이 밀어버리겠다는 기세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다. 몸은 벌써 그곳에 가있다. 

내일이 장날이면 그 전날부터 설렌다. 오일장은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처럼 시골 사람들에게 오 일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장날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만큼 장날은 손꼽는다.

내일이 장날이구먼, 사람들은 지나치면서 그 말하고 그 말에 그러게요 대꾸하는 기분으로 오늘을 보낸다. 누가 장날을 만들었지 모르지만 만든 사람을 찾는다면 기념일이라도 제정 해야한다.

그리고 오전 9시에 장날, 장날 오늘이 장날 하면서 장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꼭 엄숙한 필요도 없고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장날, 장날 오늘이 장날, 하고 흥얼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일의 기억에 장날 노래는 없다.

노래가 없어도 그는 늘 신이 났다. 작은 고개를 넘고 그 보다 큰 고개를 넘을 때도 달렸다. 달리다 지쳐 이마의 땀을 닦을 때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장날은 그에게 생일날과 진배없다. 무언가 얻고 싶은 것을 손에 쥐는.

성일이 말고개를 넘는다. 곱게 차려입은 엄마가 치마를 말아 올리고 꽃무늬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다. 엄마의 얼굴에도 오랫만에 화색이 돈다. 성일은 엄마가 웃을 때먼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마지막 고개다. 이 고개를 넘으면 쌍묘가 있다. 내리막길을 한 참 가서 마주치는 첫 번째 장면이다. 어른 들은 쌍묘까지 가면 장에 다 왔다고 말한다.

아직 간 만큼 더 가야 하지만 쌍묘를 지나면 평길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묘가 나란히 있어서 쌍묘인데 언제나 벌초가 잘 돼 있어 후손들이 효자라고 지나는 사람들마다 칭찬이다.

그러나 둘레석도 없고 흔한 비석이나 상석도 없다. 묘의 주인은 아마도 이름대신 아무개로 불렸을 것이다. 그 아무개, 아무개아닌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잔디를 깎는 후손을 봤다거나 후손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쌍묘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텃세가 심한 용곡마을이 나온다.

용곡마을 사람들은 억세다. 어디서 배웠는지 통행세를 내야 한다고 소리 지르기도 해서 등에 업은 아이들이 울기도 한다. 왜정 때 하던 못된 버릇 아직도 남아 있다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마을의 패거리들은 그보다 작은 애들이 어른없이 홀로 지나가거나 여러명이어도 숫자가 적으면 갑자기 뒤에서 다가와 바지를 벗기거나 주먹으로 등짝을 후려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가진 것을 뺏기도 한다. 대들면 얼굴을 죽사발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 소문은 다 나 있었고 인근은 물론 먼 마을 사람들도 다 안다. 읍내 장꾼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고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을 피해서 멀리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어른도 혼자가면 무섭다고 두 셋이 함께 다니기도 한다. 어린 것들에게 봉변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른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장에 가고 싶은 성일이 그러지 못하는 이유다. 그것만 없다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도 쉬지 않고 달려서 삼십 분이면 장에 도착할 자신이 있었다.  달리기라면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을 해낼 수 있다. 

사는 것이 없어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장에 가자고 엄마를 보채다가 안 되면 혼자라도 가고 달려 가고 싶은 마음에 곡마을 언덕까지 온 적도 두 어번 있다.

사람들은 용곡마을을 줄여서 곡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그곳을 지나기가 그만큼 힘겨웠다.

쌍묘를 지날 때 오금이 저렸고 언덕에 올라섰을 때 호흡이 가팔라 왔지만 장구경에 비하면 댈개 아니었다. 그러나 성일은 거기까지 였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얻어터지면 소문이 나고 그러면 그것이 장구경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소문은 두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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