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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먹지 않아도 한 번은 사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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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먹지 않아도 한 번은 사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2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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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근검절약과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낸 기적이었다.

거기에 용순의 억척같은 뒷바라지가 보태졌다. 정태는 마침내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눈을 감았고 눈을 떴다.

날마다 시도 때도 없이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해냈는지 알기에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부러움과 시기심을 동시에 가졌다.

도둑질하지 않고 어디 가서 사기 치지 않고 오로지 몸뚱이 하나의 노력만으로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그만큼 논을 내 땅을 만든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논은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자는 항상 부자였고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가난했다.

그런데 정태가 그것을 깬 것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더이상 보릿고개를 넘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됐다.

논은 논을 낳고 밭을 가져오고 소를 가져올 것이다.

천성이 성실한 그의 성품은 논이 보답했다. 놀음이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판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자신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어디서 술 한 잔 먹지 않았다. 남들은 장일 날 먹는 막걸리 한잔 들지 않았다. 술을 배우지 않은 것이 그의 체질 탓이 아니었다.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고 더 먹고 싶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아예 입에 대지 않았던 것이다.

딱 한 번 막걸리를 두어 번 거푸 먹은 적이 있었다. 동네에서 술을 잘 먹기로 소문난 병태와 마주 앉았는데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형님, 형님 하면서 불러 재키는 목소리가 제법 정이 있었다. 진짜 자기 형님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객줏집 울타리 밖으로 넘어왔다.

추수도 끝난 초겨울 어느 날 이었다. 정태는 그 날도 밤새 만든 복조리를 팔고 용순이 부탁한 옹기 하나를 사서 지게에 매고 오던 길이었다.

어찌 알았는지 병태의 고개가 담 넘어로 쑥 나오더니 형님, 형님 하고 애절하게 불렀다. 그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못들은 척 지나쳤을 것이다. 

병태는 광태와 사촌지간이었느나 광태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늘 웃는 얼굴에 남을 비웃지 않았다. 한마디로 술을 좋아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정태가 술을 먹었다면 아마도 여러번 어울렸을 것이다. 그는 먹지 않는 술이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술을 사주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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