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2-12-08 02:35 (목)
그때도 지금처럼 단풍이 드는 가을이었다
상태바
그때도 지금처럼 단풍이 드는 가을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16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상여가 멈췄다. 멈춘 상여 위로 낙엽이 떨어졌다. 언젠가 할머니가 입었던 붉은색처럼 고운 낙엽이 연이어 상여 위로 날아들었다.

팔순 생일날 할머니는 한복을 입었다. 정태는 정성스레 상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자식들이 고생이라고 한마디씩 했으나 정태는 그런 사람들을 나무랐다.

비록 한 끼가 아쉬운 형편이지만 한 번 가면 올 수 없는 저세상으로 어머니를 밀쳐내듯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루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노모를 굳이 잡고 싶지는 않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묘한 기분에 쌓인 정태는 상위의 과일들은 보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정태가 장에 가서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데로 물건을 살 때 용순은 그것이 불만이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도 시어머니가 올해를 넘기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고깃국에 흰쌀밥이 놓인 잔칫상에는 배와 사과와 깎은 대추 같은 과일이 올라왔다. 성일은 붉은 치마를 입은 할머니보다 치마보다 붉은 사과에 멈춘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단맛이 든 사과는 꿀맛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성일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절이 끝나자마자 손을 더듬어 상위의 과일을 집어 들었다.

사촌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 손에 쏟아졌다. 성일은 그것이 자신의 손에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눈독을 들이는 그들은 성일보다 서너 살 위였다. 할머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성일을 불렀다.

성일이 대답하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성일아, 형들과 나눠 먹어,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그것이 세상에 내뱉는 마지막 말이라도 되는 듯이 조용했으나 또렷했다.

당연히 나눠 먹는 것이었지만 형들 아닌 자신에게 나누는 역할을 맡긴 것이 성일은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생일상은 전날 저녁부터 차려졌다.

그날은 큰어머니 댁에 다 모였는데 큰어머니는 칼로 사과 껍질을 길게 늘어뜨렸다. 손을 이리저리 돌려서 껍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방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신기하거나 놀라는 표정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큰 어머니는 손을 위로 들고서 칼질을 마무리했다. 껍질도 공평하게 나눠 먹었다.

껍질에도 단맛이 들어있었다. 그 맛을 기억하면서 성일은 사과를 받아 들었다. 한 손으로 다 잡을 수 없어 두 손으로 받을 때 할머니의 거친 손이 사과와 함께 잡혔다.

할머니는 사과를 건네주면서 행여 떨어질까봐 안전하게 받을 때까지 그것을 놓지 않고 있었다.

강한 손길을 느끼며 성일은 할머니 잡았어, 놓아줘,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고도 한동안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때 성일은 할머니의 붉은 치마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얼굴 속으로 들어가 눈동자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에서 눈물이 나올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은 그 모습을 봤는지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일은 확실히 보았다. 할머니도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생일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두 번 다시 생일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할머니는 저절로 눈물을 떨구었다.

낙엽이 상여 위로 쌓였다. 상여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렇다고 해서 상여를 바닥에 내려 놓지는 않았다.

힘이 들면 꾼들은 서로 앞뒤로 교대하거나 다른 사람이 와서 대신 들었어도 처음 상여를 들고 난 후는 두 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메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상여 속에서 여행 중이었다. 용순은 할머니가 처음 시집오던 날을 성일에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용순이 볼 수는 없었다.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성일에게 해준 것인데 그것은 용순이 자신이 시집올 때 탔던 가마 이야기를 하다 중에 나왔다.

할머니는 가마 속에서 오랫동안 울었다고 했다. 왜 울었는지 성일은 그 내막을 기억할 수 없었다.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울던 성일에게 우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누가 울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처럼 이유 없이 울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용순이 할머니가 울었다고 말했을 때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금도 울고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성일은 할머니가 울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상여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상여꾼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면서 위치를 조금 바꿨다. 어깨가 아플 만도 했다.

벌써 이십분 째 저러고 있다. 조금 내려놓고 쉬어도 좋을 텐데 상여꾼들은 한 번도 상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것은 상여꾼들이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것이었다. 머물기를 마친 상여가 다시 앞뒤로 흔들렸다. 잦아들었던 곡소리가 조용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처음에 호방했던 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작은 소리로 바뀐 지 오래였다. 성일은 지루했다. 어서 산에 도착하고 싶었다.

바로 저 언덕만 넘어가면 되는데 상여꾼들은 나무 아래서 몇 번 더 실랑이를 벌였다. 정태는 주머니를 뒤졌으나 준비한 돈은 이미 다 쓰고 없었다.

줄 돈이 없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정태가 상여꾼 중 입김이 센 사람 앞으로 다가서려고 발길을 옮길 때 성일이 나섰다.

그리고 손에 쥔 일원 짜리 돈을 내밀었다. 꾼들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상주의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서로 눈짓을 하다가 상여는 출발했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