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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12:14 (목)
370. 그리스(1978)-가죽잠바와 머리빗 그리고 디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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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그리스(1978)-가죽잠바와 머리빗 그리고 디스코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6.05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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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해변이 그리워지는 때다. 누구나 그 여름날 밤의 풍경 하나쯤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

대니 (존 트라볼타)도 그렇다. 방학 중에 해변에서 그녀 샌디( 올리비아 뉴튼존)를 만났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18살 대니는 샌디와 사랑에 빠졌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지만 진로나 장래 희망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둘은 장난치고 사랑하면서 꿈같은 시간을 지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하면서 이별해야 하는 운명이다. 여름철의 꿈은 그렇게 사라지고 각자 학교로 돌아갔다.

대니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지난 여름 해변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달라는 성화가 대단하다. 엄마처럼 꼬치꼬치 깨묻는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다. 아니 실토라기보다는 자랑질이라고 봐야 맞다. 수영하다 쥐가 난 여자를 구해줬다. 그리고 나서 첫눈에 빠졌다. 볼링장에 데려가고 부두 아래서 서로 쳐다봤다.

그게 다야? 당연한 질문이 나왔다. 허풍떨지 말고 더 말해달라는 아우성이다. 어디까지 갔어? 진도는? 대니는 얼버무린다. 끝내줬다는 말로 대신한다.

그 시각 샌디는 여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는다. 그 남자 어땠니? 에서 시작해 차는 있어? 돈은 많어? 여자들의 질문은 남자들과는 다르다.

공통 분모는 있다. 사랑하느냐, 헤어질 때는 어땠으냐, 지금도 사랑하니? 같은 거 말이다.

떠날 때 샌디는 호주 시드니로 전학 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캘리포니아로 왔는데 하필 대니가 다니는 학교다.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난 대니는 그러나 널 기다렸다거나,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말 대신 시시껄렁하게 대한다.

무리의 보스 역할을 하는 자신이 여자 하나 때문에 쩔쩔맨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서다. 남자의 자존심을 이상하게 드러낸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대니는 멋지게 복수를 당한다.

▲ 올리비아 뉴튼존과 존 트라볼타의 춤과 노래가 압권이다. 연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둘은 실제 연인보다 더 깊고 고요한 눈길을 주고 받는다.
▲ 올리비아 뉴튼존과 존 트라볼타의 춤과 노래가 압권이다. 연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둘은 실제 연인보다 더 깊고 고요한 눈길을 주고 받는다.

토라진 샌디는 억울하고 분하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다른 남자와 어울린다. 질투의 신이 대니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대니는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댄스 대회가 열린다. 대니와 샌디는 짝으로 출연해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우승은 하지 못한다. 그런들 어떠냐. 저런들 어떠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이번에는 자동차 경주다. 상대는 멋진 차로 무장했다. 포르세와 티코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경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대니 무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튜닝을 하고 한판 대결에 나서는데 상대는 비열하다. 마치 <벤허>의 전차 경주처럼 바퀴에 날카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대니의 차를 위협한다. 그러잖아도 허접한 것이 견딜 수 있겠나.

그러나 이번에는 멋지게 따돌린다.

신난다. 져도 그만인데 이겼으니 얼마나 더 기분이 나겠는가.

승자의 자리에 춤이 빠질 수 없다. 대니의 긴 다리가 현란하게 꼬인다. 쭉 뻗은 두 손이 여지없이 하늘을 찌른다. 샌디의 꾀꼬리 목소리가 화답한다. 친구들의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

이럭저럭 졸업식이다.

졸업식에서 두 사람은 낙오하지 않았다. 그렇게 놀고도 졸업장을 주니 좋은 학교다.

그뿐인가.

둘은 꿈에 그리던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친구들 앞으로 보부도 당당하게 홍해를 가르듯 나온다. 어디서 차를 구했느냐는 질문이나 의구심을 가질 필요없다. 돈은 어디서 났으냐고 따질 것 없다.

그것이 뭐가 중한가. 차를 그것도 멋진 차고 등장한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보다 더 해피한 결말이 있을까.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 부르다 보니 어느새 영화는 끝났다.

국가: 미국

감독: 랜달 크레이저

출연: 존 트라볼타, 올리비아 뉴트존

평점:

: 고등학생이라고 깔봐서는 안 된다. 하는 짓은 50대 중 늙은이들 뺨치고도 남는다.

서슴없는 섹스는 기본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함부로 몸을 굴린다는 말이다.

술과 담배는 액세서리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개나 줘버렸다.

있는 것은 오로지 말초적 자극뿐이다. 머리빗을 뒷주머니에 끼고 다니는 장면은 그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아 웃음보가 터진다.

검은 가죽 잠바에 요즘 유행하는 레깅스는 저리가라, 착 달라 붙는 바지를 입고 두 손을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다듬을 것 없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면 잠시 눈을 감고 가죽 잠바 있나, 빗이 어디 있지, 둘러보고 두 손을 귀 뒤로 갔다 댄다.

<그리스>는 나에게도 추억이며 춤이며 디스코다.

그러니 영화에서 스토리를 따질 필요없다. 스토리는 뒤로 밀어 놓고 춤이 앞선다. 같은 해 나온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이미 그것으로 뭔가 보여줬던 존 트라볼타는 여기서 '댄스의 귀신'으로 등극한다.

제임스 딘처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그의 몸놀림은 과연 하는 극찬을 멈출 수 없다. 조신한 올리비아 뉴튼존은 애교 만점의 노래를 불러 응수한다.

둘은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으로 극강의 화합을 이룬다. OST ‘Summer Nights’, ‘You're The One That I Want'를 들으면 행복이 성난 파도처럼 달려든다. 50년대 미국의 풍경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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