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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옷 소매로 그것을 쓱쓱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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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옷 소매로 그것을 쓱쓱 닦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03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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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틈으로 성일이 고개를 내밀었다. 더는 볼 게 없다고 나무에서 내려왔는데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살아서 멱따는 소리를 외쳤던 돼지의 해체 모습을 보았다.

털이 벗겨진 돼지는 목이 몸통과 분리됐다. 제사상에서 접시에 올려진 그 머리 그대로였다. 웃고 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죽으면서 웃는 돼지는 복 받는다고 했는데 우리 집 마당에서 죽은 돼지는 그러지 못했다. 골의 여기저기에서 깊게 패인 상처가 드러났다.

아무리 돼지라 해도 그런 모습으로 웃을 수는 없다. 눈을 감은 돼지는 다행히도 눈에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누구도 돼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돼지머리는 그저 그렇게 죽은 모습으로 한쪽으로 치워졌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배를 가르자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니 마당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해체 작업도 천 노인이 주도했다. 그는 내장을 부위별로 큰 쟁반에 따로따로 놓았다. 배를 가른 내장 속으로 손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 천 노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해체 작업은 골을 부술 때보다는 한결 수월했다. 천 노인은 죽이는 것보다 죽인 것을 분리하는데 더 능숙한 솜씨를 보였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부위별로 분리되자 그는 만족스런 빛을 띄었다.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는 솜씨였다. 둘러선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그는 핏물이 뚝뚝 듣는 간을 훑어 낸뒤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피가 손을 타고 땅으로 떨어졌다. 보란 듯이 그는 그것을 도마 위에 놓고 바로 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손을 뻗었다. 주전자에 있던 막걸리가 잔에 쏟아졌다. 딱 한 잔씩만 먹드라고, 천 노인이 인심 쓰듯 말하면서 자신이 먼저 잔을 들었다.

간을 든 손들이 번들거렸고 손을 타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성일은 뒤로 빠졌다. 배가 고팠지만 간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돼지의 생간은 사람들의 입가를 피로 물들였다. 그들은 옷 소매로 그것을 쓱쓱 닦았다. 돼지 해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상여가 출발했다.

이른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마당을 떠나 선산으로 향할 때 곡소리는 절정으로 치닫았다. 소리에 놀라 만장이 펄럭였다.

선산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산의 깊은 곳에 있지 않고 야트막한 양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일은 그곳을 미리 가 보았다.

장정 여럿이서 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삽 한 자루면 돼, 일군 중 한 명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삽을 세워 누군가 깊이를 쟀다.

이만하면 됐다.

그들이 허리를 펼 때쯤 저 멀리서 상여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곡을 하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삼베를 입은 정태와 용순 등 식구들이 일렬로 서서 고개를 땅으로 푹 숙였다. 끌려가는 죄인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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