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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어렵지 않아 여러 사람이 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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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어렵지 않아 여러 사람이 달려 들었다
  • 의약뉴스
  • 승인 2021.05.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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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냥할 곳을 한 번에 명중 시키기라도 하듯이 돼지머리 쪽으로 온 힘을 집중했다.

천 노인의 얼굴에 붉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원수를 무찌르는 원한에 찬 복수극도 이처럼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돼지가 벼락치듯 고함을 질렀다.

아직 도끼날을 맞기 전이었다. 두 눈은 그것이 하늘로 치켜 올라간 것을 보았고 그것이 내려오면 자신의 삶도 끝장날 것을 알고 있기나 한 듯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외침을 질렀다.

번쩍하는 순간 돼지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울부짓었다.

천 노인은 어느새 날이 아닌 도끼 반대편의 둔탁한 곳으로 돼지의 골수를 빠갰다. 빠각, 하는 골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빠각하고 소리가 났다.

그러나 설맞은 듯 돼지의 발악은 멈추지 않았다. 실수라는 것을 깨달은 천 노인은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세 번 연거푸 돼지의 골을 내리 찍었다.

그래도 돼지는 죽지 않고 버둥댔다. 소리는 전보다 죽었으나 여전히 1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길고 날카로웠다.

나무 위에서 성일은 돼지의 골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말로만 듣던 천 노인의 솜씨라는 것도 별 것 아니라고 판단했다.

솜씨 좋은 백정이라면 단 한 번에 끝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고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그가 씩씩거리며 돼지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도끼 대신 벼린 칼이 손에 들려 있었다.

마침 두 사람이 달려들어 돼지머리를 들었고 그 아래에 커다란 항아리가 놓였다.

천 노인은 부엌칼을 돼지 목 깊숙이 박았다. 사람들이 더 잘 보기 위해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성일은 처음으로 쏟아지는 돼지 피를 보지 못했다. 성일은 고개를 빼고 옆으로 돌렸다. 그제서야 아래가 제대로 보였다.

피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숨 쉴 때마다 울컥, 울컥 피가 덩어리로 쏟아졌다. 커다란 항아리에 금새 피가 가득 차 올랐다.

돼지는 그래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는 오래도록 지속됐다.

아주 듣기 싫은 소리였다. 꽥꽥 질러대는 소리를 성일은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성일이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그 소리는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천 노인이 손에 묻은 피를 옷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손과 옷에 핏자국이 선명한 그는 울지 못하는 목과 몸통이 분리된 돼지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전에 펄펄끊는 물이 돼지 몸에 쏟아졌다. 물은 금세 김을 뿜어 올렸고 돼지의 몸은 차차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달려 들어 털을 뽑기 시작했다. 뭉텅 뭉텅 손에 잡힌 검은 털이 한쪽 구석에 쌓여갔다.

그 일은 여러 사람이 달려들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돼지 털을 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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