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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4 23:04 (수)
사람들은 그를 언제나 이름 대신 천노인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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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언제나 이름 대신 천노인이라 불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5.2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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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리는 앞다리끼리 뒷다리는 뒷다리끼리 묶인 돼지는 발악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기나 한 듯이 마구 몸을 비틀어 댔다.

그러나 풀려날 수는 없었다. 새끼줄로 두어 번 세게 묶은 다음 풀릴 수 없는 팔자 매듭을 졌기 때문에 돼지는 그저 발버둥 칠 뿐이었다.

우리에 갇힌 돼지가 밖으로 나올 때 치던 발더둥 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돼지는 거적에 똥을 싸질렀다.

돼지가 똥을 싸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나 그때만큼은 달랐다. 팽나무 위에서 천구는 원해서 싸는 똥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나오는 똥을 봤다.

똥 냄새가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돼지는 자신이 똥을 싼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오로지 살기 위한 몸부림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돼지는 체념보다는 희망의 기운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지르고도 또 계속해서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앞뒤를 잴 시간이 돼지에게는 없었다. 지금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분별없이 질러대는 소리는 그래서 더 처연했고 듣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털이 곤추섰다. 뼈도 일어났다. 몸 밖으로 털과 뼈가 빠져나가려고 안달을 하고 있었다.

돼지의 앞다리 근육이 불끈하고 솟아 올랐다.

뛰어 놀아서 비린내도 나지 않겠어, 누군가 입맛을 다셨다.

천구는 애달프고 구슬펐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일이 궁금했다. 몸을 움츠리고 가슴을 쓸어 안고 심호흡을 하면서도 눈길은 돼지에게서 한시도 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도 천구는 돼지를 잡을 때면 늘 긴장했다. 돼지털이 서는 것과 같이 천구의 팔뚝에는 닭살이 돋아났다.

그 때 돼지 입에서 게거품이 품어져 나왔다. 하도 소리를 질러서 소리 대신 속에서 무언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준비했다. 그들도 돼지가 쉬지 않고 질러대는 소리에 기가 질렸다.

아랫마을 사는 천 노인이 도끼의 날을 손으로 만져봤다. 잘 갈렸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돼지는 마당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한 발 더 가까이 갔다.

그러자 도끼를 든 천 노인이 저리 비키라는 듯이 도끼날을 가볍게 흔들었다. 천 노인은 머리가 하얗게 세서 그렇지 실제로는 40 초반의 아직은 팔팔한 나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이나 다른 말 대신 항상 천 노인으로 불렀다. 그는 돼지 잡는 날이면 언제나 도끼를 들고 제일 먼저 달려왔다.

그가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돼지 잡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가 언제나 한 방에 보낼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뽐내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큰 덩치와 괄괄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압도했다. 돼지가 돼지를 잡는 꼴이었다.

그가 도끼를 들자 날 선 빛에 사람들이 놀라 한 걸음 물러나기 전에 멈칫했다. 그리고는 천 노인의 눈길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그가 도끼를 번쩍 들었다. 장작을 패는 사람처럼 그는 든 도끼를 사정없이 아래로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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