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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139. 모범적인 백만장자(1889)-부제: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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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모범적인 백만장자(1889)-부제: 찬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5.07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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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 공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희박한 이야기다. 당첨 확률 거의 제로인 로또와 엇비슷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벼락같은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삶이 피폐해서라기보다는 막연한 어떤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소에 작은 선행 정도는 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기대만 크고 착한 일 대신 나쁜 일만 일삼는다면 행운의 여신은 왔다가도 도망친다.

동화 속 이야기라고 해도 실천해서 나쁠 것이 없다. 큰돈 드는 것도 아니고 없어도 될만한 정도라면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의 수레를 뒤에서 밀어줬다.

언덕을 다 오른 짐수레 꾼은 고맙다는 성의 표시로 엿 한가락을 주었는데 집에 와 보니 엿이 아닌 황금 덩어리였다. 이런 행운의 일화는 만들어 냈든 아니든 찾아보면 간혹 나온다.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벼락같은 운명이 찿아온 모양이다.

잘 생기고 멋 부리고 예술을 사랑했던 철저한 탐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아주 짧은 내용이어서 어느새, 벌써 하는데 이야기는 끝났다. 단편 중에서도 아주 짧다. 짧다고 해서 내용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장편보다도 울림이 있다.

글은 길고 짧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재단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아름다운 백만장자>가 제목이 되겠다.

여기 한 젊은 남자가 있다. 이름은 휴기 어스틴. 외모만 빼고 그는 별 볼 일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 없음은 한 인간을 왜소하게 만든다. 특히 남자라면 더 그렇다.

직업이 있기는 했었다. 증권거래소에도 다니고 차 장사나 술 장사도 했다. 그러나 말아 먹었는지 이제는 다 청산하고 완전한 백수가 됐다.

놀고 먹지만 사랑은 해야 한다. 엎친데 덮친꼴이다. 로러 머튼은 그에게 과분한 존재다. 결혼만 해준다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신발에 입맞춤이라도 할 태세다.

그러나 예편한 대령 출신인 그녀의 아버지가 허락해 줄리 없다. 휴기를 좋아하는 것과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약혼 이야기 같은 것이 나오면 들은척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혹시 모르지. 돈 일만파운드가 있다면.'

휴기는 이런 말을 귓전으로 듣고 상심한 나머지 화가 친구 트레버를 만나러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거의 모두가 화가를 내세우지만 트레버는 달랐다.

▲ 늙은 거지 모델은 알고 보니 영국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그는 선행을 베푼 주인공에게 결혼 지참금을 준다. 작은 선행이 크게 돌아온 결과다.
▲ 늙은 거지 모델은 알고 보니 영국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그는 선행을 베푼 주인공에게 결혼 지참금을 준다. 작은 선행이 크게 돌아온 결과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고 그가 그린 그림의 가격은 무려 이천 파운드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모델은 한 시간에 겨우 일 실링이다.

여기서 뭐, 그림값이나 모델의 가격을 논할 생각은 없다. 똑같이 고생했어도 둘의 가치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더구나 잘 나가는 누드 모델도 아니고 거지 노인이라면 그만큼이라도 감지 덕지 해야 옳다.

모델 거지는 휴기가 보기에도 딱하다. 노인은 완전히 시들어 버렸고 얼굴은 주름진 양피지 같았으며 표정은 처량하기 그지 없다.

누더기 옷에 올이 성긴 망토를 걸치고 장화는 여기저기 기우고 때운 흔적 투성이다.

가난뱅이 휴기가 보기에도 노인은 불쌍하다. 뭐라도 있으면 주고 싶을 정도다.

마침 주머니를 뒤져보니 금전 하나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그는 집까지 두 주 동안 마차를 못 타고 걸어가야 한다.

휴기는 망설이지만 그것을 적선을 바라는 낡은 모자에 집어 넣는다.

작은 선행을 실천한 휴기에게 어떤 보상이 따랐을까, 앞서가는 독자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서두에서 이미 언질을 줬으니 엄청난 그 무엇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알고보니 그 늙은 거지는 영국에서 제일가는 갑부였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은행에 넣어 둔 돈만 해도 런던 전체를 살 수 있고 각 나라 수도마다 집이 있으며 금 접시로 식사를 하고 원한다면 러시아가 전쟁에 나서는 일도 막을 수 있을 정도다.

입이 턱 벌어지는 수준이다. 거지는 휴기의 선행에 감동을 받았다.

이처럼 자세히 적는 것은 이런 일은 널리 알려 작은 선행이 물밀 듯이 다가와서 지구 전체가 좀 더 따뜻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노인은 휴기에게 대령이 원하는 결혼 자금을 주었다. 자, 이쯤 되면 여러분이나 나나 당장 선행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한다.

거지를 찾기 위해 눈을 부라리면서 주머니속의 돈을 만지작 거려보자. 되지도 않는 로또에 기대를 거는 것보다 확률이 더 높겠다.

: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부자가 아니라면 매력적이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로맨스는 실직자의 일이 아니라 부자의 특권이다.”

정곡을 찌르는 묘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 정도 되니 이런 말을 하지 다른 사람이 했다면 생매장 당하기 십상이다.

돈이 없으면 사랑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삿대질에 이어 주먹질이 이어질게 뻔하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실질적이고 재미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매력적이기보다는 안정된 수입이 있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 휴기는 이런 근대적 삶의 위대한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해도 예외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 예외가 나와는 항상 무관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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