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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시 조용해 졌고 그는 더 근엄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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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시 조용해 졌고 그는 더 근엄해 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4.30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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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의 통제하에 있었다. 처음에는 통제하려고 했으나 나중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되기를 원했고 그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야 안심이 됐다.

우산속의 사람들은 그것이 편했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누가 와서 신분증 검사를 하자고 하지 않았다. 잡혀가지 않으니 생업에 지장이 없었다.

비가 와도 걱정이 없었다. 간혹 바람이 세면 옷이 젖기도 했지만 흠뻑 젖은 생쥐 꼴은 면했다.

하늘이 개고 나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옷은 금방 말랐고 비는 매일 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이야말로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우산은 빈 공간이 항상 있었다. 크기가 작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 국민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인데 한쪽 구석은 사람이 차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뭐가 문제인데 나머지는 들어오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눈치 빠른 참모는 어리석은 자를 탓했고 자신들이 부지런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들여놓겠습니다. 눈이 크고 입이 튀어나온 참모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그는 좀 더 분발하라고 내가 믿는 것은 너밖에 없지않느냐고 조용히 말했다.

그에게는 그 말고도 또 다른 참모가 있었다. 다른 참모도 그 전의 참모처럼 똑같은 말을 했고 그러면 그는 역시 같은 말로 화답했다.

그들은 술을 주고받으면서 세상사를 걱정했다.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고 다른 누구도 그들의 것을 침범할 수 없었다.

아주 어쩌다 의아심을 갖는 사람이 있기는 했으나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금세 잊혀졌다.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음 날부터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세상은 다시 조용해 졌고 그는 더 근엄해 졌다. 그의 것은 확고했고 우산은 좀 더 커졌고 빠졌던 백성들 중 일부는 새로운 우산 가족이 됐다. 그는 영원히 살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죽었으니 그 죽음은 놀라운 것 이상의 것이 되고 말았다. 우산속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당황했다.

그들은 받쳐줄 사람이 없는 우산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저희들 끼지 싸웠다. 우산은 찢겨 졌고 사람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우산 밖으로 밀려났다.

밀려난 사람들은 무너져 내렸다. 마구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원통한 일은 살아생전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소리 질렀다.

그들은 슬픔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에게 입은 은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오랜 슬픔은 애도의 깊이를 재는 척도였다. 그래서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그것에 방해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기쁨은 숨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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