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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생의 한 가운데(1950)- 지금 삶 극복하면 더 나은 삶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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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생의 한 가운데(1950)- 지금 삶 극복하면 더 나은 삶 살 수 있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4.26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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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10대 후반의 나이로 대학생이다. 슈타인은 30대 후반이다. 얼추 20년의 시간 차가 있다.

니나가 알에서 막 깬 병아리처럼 아직 불안하다면 슈타인은 그런 단계를 벌써 지났다.

니나가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의사이면서 대학교수인 슈타인은 풍요롭다.

성격도 다르다. 니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면 슈타인은 컨트롤 좋은 투수로 정확히 포수의 글러브에 공을 던질 줄 안다.

둘은 이처럼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차이는 좁혀지기 위해 존재할 수도 있고 간격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고 더 벌어질 수도 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는 둘의 이런 차이를 어떻게 조화하고 무시하고 건너뛰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독자들은 조마조마하다. 니나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 없고 그런 니나를 지켜보는 슈타인이 언제 손을 털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니나의 자유와 그것을 추구하는 추진력에 감탄한다. 어려운 숙제도 피하지 않고 백지 대신 오답이라도 낸다. 포기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이 니나의 장점이다.

슈타인은 머뭇거린다. 용기 부족일 수 있고 나약함일 수도 있고 결과에 따른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책임감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니나에 열광한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고 나약하지만 강한 그녀를 닮고 싶다. 자신에게 없는 그 무엇을 니나가 갖고 있고 니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원한다.

반면 슈타인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늙고 병든 수캐처럼 보인다. 누구나 니나편이다. 활어를 선어보다 선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니나의 천방지축보다는 슈타인의 쓸쓸한 고독을 먼저 생각한다. 그 고독은 집나간 자식을 대하는 부모처럼 맹목적이다.

그녀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지적하면 이해 못한다고 화를 내는데도 그런 투정을 다 받아준다.

슈타인은 그 자신의 의지로는 니나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아니 니나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니나는 마침내 내가 결혼을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당신이라는 말로 슈타인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그러나 슈타인은 멈칫한다.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이것은 단지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의 남자가 갖는 어떤 드러나지 않는 죄의식은 더욱 아니다.

슈타인은 왜 여러 번의 기회가 있는데도 니나를 갖지 않고 가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가고 난 다음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니나를 잊지 못하고 그런 행동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까.

사랑하지만 사랑을 드러내지 않고 소유하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와도 뒤로 물러서는 슈타인. 바보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해하면서도 이해 불가다.

▲ 슈타인은 니나에게 숱한 편지를 쓴다. 언니는 편지를 읽으면서 니나와 슈타인의 생을 따라간다.
▲ 슈타인은 니나에게 숱한 편지를 쓴다. 언니는 편지를 읽으면서 니나와 슈타인의 생을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은 모두 슈타인 대신 니나를 생각한다. 책을 끌고 가는 힘은 언제나 니나에게 있다. 니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슈타인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런 표현을 쓴다면 니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발끈하는 독자도 있겠다. 그러나 어쨌든 니나는 필요하면 슈타인을 하인 부르듯 부르고 필요 없으면 가차 없는 이별을 반복한다.

만났을 때는 언제나 부탁을 한다. 구석에 몰려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영혼을 구한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자만한다. 헤어질 때는 슈타인의 심기를 건드린다. 만날때도 그렇고 헤어질 때도 편하게 보내지 않는다.

슈타인이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남자와 팔짱을 끼고 호텔을 드나들고 결혼할 남자를 싫어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소개시켜 준다.

한 술 더 떠 슈타인과 동성애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절친한 친구 알렉산더의 아기를 갖는다. 그리고 다른 남자 퍼시와 결혼한다.

아이를 지우려 할 때는 혼자 힘으로 못하고 슈타인을 부른다. 뱃속의 아이가 퍼시 애가 아닌 알렉산더 아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면서.

이런 니나의 결혼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니 마음 내키는 대로의 영혼을 가진 니나는 왜 이런 어이없는 결혼을 했을까.

힘이 세고 키가 크고 매력적인 이유만으로 퍼시를 선택한 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와는 다른 것이다.

육체적 욕망을 압도하는 정신을 갖고 있음에도 때로는 그것에 굴복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이혼은 정해졌다. 마치 그러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니나는 이혼 도장을 미련 없이 찍는다. 이후 니나는 알렉산더의 애와 퍼시의 애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애들이 아니고 니나이니 이런 문제는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애가 있음에도 니나의 행동은 그 전과 같이 거침이 없다.

어느 날에는 슈타인을 불러 정치적 망명을 하는 사람들을 국경까지 데려다 줄것을 요구한다.

니나의 말이라면 거절을 모르는 그는 들키면 사형에 처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한다.

나치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니나의 부탁이 아니라면 슈타인이 기꺼이 목숨을 내걸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번은 독약을 요구하기도 한다. 감옥에 있는 전 남편 퍼시가 교수형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니나가 슈타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니나는 슈타인의 이런 헌신에 대한 어떤 보상도 내리지 않는다.

슈타인 역시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으니 니나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이 내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런 일을 무려 20년 동안 한다. 지지치도 않고 싫증 내지도 않는다.

만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한동안 연락이 오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한다. 그러다가 소식이 있으면 새벽이든 다른 나라든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슈타인.

자살을 기도해 다 죽다시피한 것을 살려낸 것도 슈타인이다. 니나가 내란방조죄로 체포돼 15년 형을 받았을 때 슈타인은 나치당에 스스로 입당한다.

니나를 빼내는데 나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이것을 슈타인의 니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슈타인의 인물상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그동안 니나에게만 집중된 관심을 이제는 그에게로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이야기는 10년 이상 나이 차이나는 언니와 니나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떨어져 있었고 관심도 없었으나 니나의 생일 날 만난 두 자매와 그 즈음 배달된 슈타인의 편지와 일기를 통해 니나와 슈타인의 인생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언니는 편지를 읽고 니나는 그런 언니와 간간이 이야기를 나눈다. 언니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저 들어주고 읽을 뿐이다.

편지를 읽는 언니와 가끔 끼어드는 니나와 편지 속의 슈타인, 이 세 사람을 통해 인생과 자유와 통제되지 않는 삶과 모험과 위험이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잠시 상념에 빠진다.

누구나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난다. 이미 지난 사람도 있고 지나는 사람도 있고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이 생의 가운데를 지나갈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거리를 이 책은 어느 방향으로도 인도하지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한다.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공통분모는 없기 때문이다. 삶은 각자 처한 환경과 그 자신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비록 불만스럽다고 하더라도 잘못 산 삶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삶을 극복하면 더 높은 삶은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슈타인보다는 니나의 삶을 살고 싶다. 억압받기보다는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에서 나를 구한 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무모한 용기가 니나를 오늘날에도 추종하게 만든다.

니나는 루이제 린저의 분신이다. 그녀 역시 세 번이나 결혼했으며 나치에 저항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설만큼 활달했다.

그녀의 영혼이 온전히 니나에게 투여됐다. 저자는 윤이상 대담집을 냈고 북한 여행기도 썼다. 우리와 어떤 면에서는 친숙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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