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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18:17 (목)
대담한 소수의 사람만이 마지막을 위해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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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소수의 사람만이 마지막을 위해 적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4.2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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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걸려서 넘어질 수 있는 돌부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넘어지는 곳이 시궁창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꽉 박혀 얼굴을 감추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걸어가는 것보다 나았다.

그도 아니라면 고릴라처럼 두 주먹으로 가슴을 꽝꽝 치면서 세상을 무섭게 저주해야 했다. 빌어먹을 세상이로구나. 기둥이 무너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나라도 싸움을 걸어야 한다.

덩치 큰 자에게 이유 없이 덤벼들어 가슴을 탁, 쳐야 한다. 왜 그러냐고 영문을 몰라 하면 한 대 더 쥐어박고는 그자의 주먹을 말없이 받아야 한다.

한없이 얻어터져 피투성이가 되겠다. 그것이 나았다. 때리고 얻어맞는 자가 어른이라도 상관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신이라도 무시하겠다.

마른 땅에 날벼락을 내려 준 이유가 무엇인지 삿대질하면서 따져야 한다. 하늘도 다른 사람처럼 모른 체하면 냅다 발길질을 날려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자 걷던 발걸음이 저절로 땅을 차고 있었다. 푹 숙인 고개는 완전히 꺾였다.

이 판국이니 기말고사 걱정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시험은 무의미했다. 준비하지 않은 것이 되레 잘 됐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는데 그것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지속 되던 일상은 끝났다. 평온이 사라진 세계는 암흑이거나 빙하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분이 없는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삶을 이어갈 것인가. 잡을 줄도 없고 세울 기둥도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지탱해야 하는지 성일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해 답답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상의 멸망 앞에서 성일은 할 말을 잃었고 스스로 자신에게도 최후가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성일과 같은 그런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대담한 소수의 사람만이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적었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 나머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눈치를 살피는 사치를 누릴 뿐이었다.

답답함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오자 성일은 조금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는 작심한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러자 고여 있던 것이 찔끔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한숨이 따랐다. 답답한 것이 조금은 사라졌나 했는데 다시 가슴을 조여왔다. 숨을 쉬어도 다 들이마실 수는 없었다.

반쯤 들어간 산소는 급히 밖으로 나왔고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을 크게 입을 벌려야 겨우 한 모금 정도 들어올 정도였다.

그것으로는 막힌 속을 속 시원히 뚫어 줄 수가 없었다. 겨우 살아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서 있을 힘은 사라졌고 맥은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갔다. 난파선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위해 잠시 수면 위에서 작은 소음을 일으키는 것과 같았다.

이래도 되는가. 그분이 없는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맥박은 양심도 없고 보는 눈은 염치가 없었다.

핑 돌던 눈물이 다시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성일은 애써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다시 아래로 꾹 눌러서 안에 있는 눈물샘을 더 자극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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