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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367. 돌이킬 수 없는(2002)-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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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돌이킬 수 없는(2002)-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4.20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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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것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사로잡히면 보는 눈이 돌아가 이성이 사라지고 짐승이 자리 잡는다. 이때 일은 저질러진다.

인간을 쏜 한 마리의 야수는 바짝 마른 나무에 불을 질렀다. 재만 남고 모든 것이 파괴됐다.

가스파 노에 감독은 제목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한 사내와 한 여자의 짧고 강렬한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를 섬뜩하게 그려 내는 데 성공했다.

알렉스(모니카 벨루치)는 파란 잔디 위에 누워 책을 보고 있다. 한가한 모습이다. 평화와 행복을 그려볼 만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영화의 시작이 아닌 끝이다. 끝과는 달리 시작은 무섭고 겁난다.(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간다.)

난잡한 클럽에 성난 사내 마르쿠스( 뱅상 카셀)가 들이닥친다. 다짜고짜 테니아를 찾는다. 마약이나 춤 혹은 섹스에 열중한 이들 가운데 아무나 잡고 거칠게 밀어 붙인다.

테니아 알아?

그러다가 그로 짐작될 만한 한 사람을 찾아낸다. 그러나 성미만 급했을 뿐 되레 그에게 당할 처지다. 게이들이 득실한 곳에서 엉뚱한 봉변을 당하게 생겼다. 준비 없이 복수를 서두른 결과다.

그러나 그에게는 친구 피에르가 있다. 그의 손에는 가스통이 들려 있고 전세는 금세 역전됐다. 복수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리던 피에르는 눈이 돌아갔다.

상대는 곤죽이 된다. 그 장면은 너무 잔인해 잔인한 것만 골라보는 사람도 구역질로 시큼한 냄새를 맡아야 한다.

그가 이미 죽은 자를 쉴새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자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한가하게 책을 읽던 알렉스가 갑자기 엉망에 이르는 과정을 뒤따라 가보자. 알렉스는 원래 피에르의 여자였다.

그러다가 친구인 마르쿠스에게로 건너갔다.( 표현이 그렇지만 어쨌든 이제는 피에르의 애인이 아닌 마르쿠스의 애인이다. 친구가 애인이 됐으니 이는 잘못된 만남이다. 그러나 이들은 ‘쿨’ 해 헤어지고 새 애인을 맞았으나 셋이 함께 어울린다.)

그들은 춤을 추고 약을 하고 아무나 상대를 바꿔서 즐길 수 있는 클럽으로 향한다. 놀아보자는 심사다. 클럽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그들은 노골적인 성적 대화를 거침없이 한다.

▲ 피에르의 애인이었다가 친구인 마르쿠스의 여자가 된 알렉스가 두 사람과 함께 파리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 피에르의 애인이었다가 친구인 마르쿠스의 여자가 된 알렉스가 두 사람과 함께 파리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옆자리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실컷 기분을 돋군 그들은 흥에 겨워 그 기분 이어가고 싶다. 게이 클럽에서 마르쿠스는 알렉스 보다 다른 여자에게 군침을 흘린다.

밤늦은 시각 입이 나온 알렉스는 데려다주겠다는 제의를 마다하고 혼자 클럽을 나온다. 거리는 한산하고 몸을 파는 여자는 길 건너서 택시를 잡는 것이 수월하다고 알렉스에게 귀띔한다.

그녀는 지하 보도를 걷는다. 그 뒤를 카메라가 쫓는데 매우 흔들린다.( 카메라의 흔들림은 오프닝과 함께 시작한다. 어지럽다. 그렇다고 면역된 건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무언가 불안하다. 저쪽에서 여자를 구타하는 남자가 있다. 알레스는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하게 칼로 위협한다. 여기서 그가 마르쿠스가 찾던 테니아 라는 생각을 해 볼 만 하다.

그자가 불량하고 불량한 자는 여자를 그대로 두지 않고 강간하고( 이 장면 너무 길다. 영화적 표현은 롱 테이크.) 그것으로 부족해 뒷머리를 잡고 땅에 박아 얼굴을 아예 피떡으로 만든다.

젊고 예쁘고 활력 넘쳤던 알렉스는 이제 다시는 그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돌이킬 수 없게 된 알렉스가 사이렌 소리 왁자한 가운데 들것에 실려 나온다.

그 모습을 마르쿠스가 보고 눈이 뒤집힌다. 네가 테니아야, 하고 물어댔던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테스트 기기가 그것을 입증했다. 여기서 애의 아빠가 마르쿠스인지 피에르인지 따지는 관객은 없겠다. 영화에서 그것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

그때가 좋았다. 클럽에 가기 전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은 서로 벗은 몸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간은 그 모든 것을 파괴했다. 책을 봤는데 우리 미래는 정해져 있어, 라고 말했던 알렉스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포스터는 무엇을 비유하는가. 변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운명을 그녀는 탓해야 한다.

국가:프랑스

감독: 가스파 노에

출연: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평점:

: 문제적 감독 가스파 노에는 <돌이킬 수 없는> 제목의 돌이킬 수 없는 영화로 칸 영화제를 뒤집어 놓았다. 영화를 보던 많은 관람자가 자리를 떴고 일부는 실신했다.

잔인함의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역질을 참아내고 여기까지 온 관객은 이런 의문을 가진다. 복수는 이래야 하는가. 이것이 진정한 복수의 방법인가.

그러나 정작 복수의 대상을 잘못 찍었다면 그래서 그 잔인무도한 모습을 옆에서 웃으며 지켜보는 자가 있다면 이 역시 운명의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늘을 원망하기 이전에 허탈할 수밖에 없다.

잔인하기만 하다면 이 영화는 쉽게 잊혀 졌을 것이다. 이보다 더 악랄한 영화는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

잔인한 이면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이 영화에는 똬리 튼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오늘의 한 줄 평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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