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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만복사저포기(조선전기)- 처녀 귀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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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만복사저포기(조선전기)- 처녀 귀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4.01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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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두 손을 모은다. 성당에 가면 공손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양생이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만복사 절 한 칸에 살면서 감히 부처님과 내기를 걸었다.

저포 놀이(윷놀이)를 해서 지면 법연을 베풀어 제사 지내고 자기가 이기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 소원을 이뤄 달라는 것이다.

조금 황당하고 무례한 짓이다. 그런데 양생이 이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어느 봄날 양생은 외로운 마음에 달 밝은 밤을 허송세월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양생은 전라도 남원 사람인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결혼도 못 한 채 홀로 살고 있다.)

단순히 아, 외로워하고 한숨지은 것이 아니고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그 시가 얼마나 애절하고 낭송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구슬펐는지 하늘이 화답했다.

“그대가 아름다운 배필을 얻고 싶다면 어찌 이루어지지 않을까 근심하시오?”

공중에서 홀연히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부처님과 내기를 걸었으니 양생을 딱히 나무랄 수만은 없다.

내기에서 양생이 이겼다.(아마도 부처님과 내기한 사람은 양생이 처음일 것이고 그 내기에서 이긴 사람도 양생이 세계에서 첫 번째 사람일 것이다.)

부처님이 내기에 응답했고 내기에 지면 약속을 지키겠다는 언약을 했다는 말은 없다. 양생은 그것을 인식한 듯 아예 쐐기를 박는다.

일이 정해졌으니 절대로 속이면 안 된다고. 이판사판이다. 부처님을 상대로 협박까지 한다. 이 말을 마친 양생은 불상 아래에 숨어 약속이 지켜지는지 기다렸다.

여기서 독자들은 기대할 것이다. 예쁜 처녀가 나타나 양생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 양생과 여인은 만복사에서 만나 사흘간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년과 같다. 여인은 저승으로 다시 떠나고 홀로 남은 양생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평생을 홀로 살면서 떠난 여인을 그리워했다.
▲ 양생과 여인은 만복사에서 만나 사흘간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년과 같다. 여인은 저승으로 다시 떠나고 홀로 남은 양생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평생을 홀로 살면서 떠난 여인을 그리워했다.

과연 그런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양생 앞에 하늘의 선녀, 바다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나타났다. 나타난 그녀는 양생의 품에 안기기 전에 축원문을 꺼내 불상 탁자 앞에 바쳤다. ( 그 남자에 그 여자다.)

왜구가 쳐들어와 집들을 불사르고 백성을 노략질했으나 자신은 규방 깊은 곳에 숨어서 끝까지 정절을 지키고 화를 면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화를 면하기는 했지만 정처 없이 떠다닐 수밖에 없고 살아 갈 길 막막하니 부디 연민의 정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소녀는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전생의 업보도 피할 수 없으나 인연이 있다면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양생의 소원을 들어준 부처님이 여인의 소원을 아니 들어줄 수 없다. 불상 아래에 있던 양생이 나왔다. 둘은 서로 사랑했다. 하늘이 돕고 부처님이 은덕을 베풀었다.

비록 부모에게 고하지 못한 것이 예법에 어긋나나 여인은 고운 님을 만나 백년해로하게 된 것을 감사했다. 술을 먹고 시를 짓고 두 사람은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밤은 깊어가고 서산의 달은 봉우리에 걸렸다. 닭 울음소리가 들릴 즈음 양생은 소녀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작지만 매우 정갈한 집 한 채가 있었다.

그곳에서 양생은 소녀와 꿈같은 사흘을 보냈다. 여인이 말했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 세상의 삼 년과 같다고. 그러니 이제 낭군은 집으로 돌아가 생업을 돌보라고.

일방적인 이별 통보다. 순순히 물러날 양생이 아니다. 어찌 이별이 이다지도 빠르단 말이오?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인은 이미 결심이 섰다. 언젠가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풀자. 그러니 오늘은 떠나기 전에 제 이웃 친지나 만나보자고 한다.

양생은 당연히 그러자고 동의한다. 세 명의 이웃이 왔다. 정씨, 오씨, 김씨였다. 모두 이웃 친척이며 아직 시집가지 않은 세 처녀는 시 한 수씩 읊어 대기 시작했다. 그 시들이 어떤 내용인지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세 여인의 시가 끝나자 양생의 여인은 자신도 자획 정도는 대강 분간할 수 있으니 어찌 홀로 아무 말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칠언사운 한 편을 지어 올리고 양생 또한 화답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돌아가면서 시도 나누고 술도 먹었으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여인은 아쉬운 듯 양생에게 은그릇 하나를 주면서 내일 자신의 부모가 보련사에서 음식을 베푸는데 가는 길에 기다렸다가 만나기를 원했다.

양생은 그러마, 했다. 장인, 장모인데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마땅하다. 다음날 양생은 죽은 딸의 대상( 죽은 지 25개월 만에 치르는 제사)을 치르러 오는 여인의 부모를 만났다.

거기서 양생은 여인이 왜구의 침입으로 살아남지 못하고 죽은 지 벌써 3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여인은 떠났다. 저승길에도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 여인이 떠나고 나서 양생은 그녀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 비록 삶과 죽음의 길이 다르지만 평생 잊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어기지 않고 양생은 지리산 약초꾼으로 살면서 다시는 장가를 들지 않았다. 저승길로 떠난 여인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한편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작가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그의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 중 하나이다.

김시습은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했으나 조정에 나가 크게 쓰임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대개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데 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경주 금오산에 31살 때 집을 짓고 7년간 생활했는데 이때 창작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평생 방랑하던 김시습은 1493년 (성종24년 )충남 부여 무량사( 무량사는 고향과 가까워 어려 번 가보았다. 이번에 가면 처음 가는 것처럼 새로울 것이다. 어서 가서 김시습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에 머물면서 <묘법연화경>의 발문을 썼다.

그리고 그해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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