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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바닥에 대고 소대장은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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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바닥에 대고 소대장은 힘을 주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3.30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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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엉켜 주먹질이 오갔다. 그때 처음으로 소대장은 주먹을 사용했다.

손에 달린 그것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해 썼다. 정확히는 친구를 때리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몇 번 헛방질 끝에 상대의 얼굴에 주먹이 닿았다. 그 때 그는 주먹이 받는 충격을 가늠했다.

묵직하기도 했고 어설프기도 했다. 상대방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소대장은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 소대장은 거울속의 자신을 보았다. 얼굴이 부어 있었고 멍이 들었으나 충분히 감출만 했다.

나에게 맞은 아이도 이 정도의 상처를 입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더는 이 주먹으로 오늘 처럼 다른 사람의 얼굴을 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주먹이 조금 근질거렸다.

주먹을 들어 올리고 싶었다. 다친 곳이 있는지 그 때 경주의 여관방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두 눈으로 보아야 했다. 손이 조금 움직였다.

그 이전에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한 곳으로, 정신이 다른 곳이 아닌 주먹으로 모였다. 땅에 있는 주먹을 들어 올려 눈앞에 갔다 놓으면 더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 듯했다.

눈으로 주먹의 상태를 확인하면 충분했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다녀오기 전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결국 소대장은 눈을 떴다. 떴다기보다는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눈이 떠졌으나 세상을 온전히 볼수는 없었다.

여전히 흰빛과 검은빛이 급하게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차하는 빛의 사이로 희미한 영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엇갈리기도 했으며 같은 방향으로 뭉치기도 했다.

마침내 검게 그을린 손등이 나타났다. 무의식적으로 소대장은 손을 들어 눈 가까이에 갔다 댔다. 주먹이라고는 했지만 손가락을 감아쥐지 않았으므로 그냥 손등이라고 해야 옳다.

손가락은 안으로 굽어 있었다. 그것을 쫙 펴거나 쥘 수 없으니 힘에 부쳐 그렇게 된 것이다.

소대장은 이제 주먹은 잊었다. 손 등 밖으로 보이는 작은 나무들과 돌들과 그 너머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신이 든 소대장은 고개를 약간 들어 올렸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비스듬히 경사진 곳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고개를 들지 않더라도 아래쪽의 시선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까지 들 수 있는 힘이 생기자 이번에는 일어나서 앉아 보려고 했다.

양손을 바닥에 대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팔은 힘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아직 그럴 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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