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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체 사이로 희미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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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체 사이로 희미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3.22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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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난 시간 만큼 소대장은 더 자고 나서야 눈을 떴다.

눈을 떴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뜬 것은 아니다. 그러니 뜬 눈으로 어떤 사물을 보고 인식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눈을 떴으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사 무엇이 보였다고 해도 본 것이 무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볼 수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아직 검었고 검은 것은 형태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또 잔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눈을 뜬 상태로 몸을 뒤틀은 것은 태양이 얼굴에 정면으로 빛을 내뿜고 있는 정오 무렵이었다.

무언가 망치로 눈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은 눈 위의 눈꺼풀을 세게 꼬집은 것 같았다.

검은빛 대신 이번에는 흰빛이 소대장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해 저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그렇다고 빛나는 빛의 형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수한 빛은 눈 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상태로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반짝였다. 자는 사람을 깨워 그 눈 위에 후레쉬 빛을 터트린 것과 같았다.

소대장은 경주로 소풍을 갔었다. 중학교 때였다. 아이들이 한 방에서 열 명 정도 잤다. 늦게까지 다들 놀고 떠들어서 선생님의 꾸중도 들었다.

나중에는 여관집 주인이 들이닥쳐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때뿐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소리가 고요해지고 자는 아이들이 늘어났을 때는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소대장도 그 무렵 잠이 들었을 것이다. 막 잠에 들었는데 어떤 왁자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엄청난 빛이 번득거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눈을 감고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한참 후에 눈을 떴을 때 비로소 검은 물체 사이로 희미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미 말로써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으나 눈으로 확인 하는데는 족히 10분은 거렸던 것 같다.

소대장은 지금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빛의 폭력을 행사한 그들을 저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력배라고는 할 수 없어도 양아치 짓을 일삼았던 그들 역시 친구들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아무 말 없었으나 웃는 얼굴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아니 그랬다고 믿고 싶었다.

그들이 용서를 빌든 안 빌든 소대장은 게의치 않았다. 그들보다 센 자들이 자신에게 빛의 폭력을 행사했던 그들을 응징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기념품 가게에서 그들은 돈을 내지 않고 목걸이나 장신구 등을 한 가방 쓸어 담았다.

옆에서 소대장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힘이 없었고 따라서 그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불룩한 가방을 메고 유유히 기념품 가게를 나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들은 노획한 기념품을 멀지 않은 곳에서 꺼내 놓고 시시덕거렸다.

한 발 앞에서 세 명의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네 명의 아이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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