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5 08:54 (목)
그는 말을 채 마지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상태바
그는 말을 채 마지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3.04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인간은 굶을 수는 있어도 그것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 먹을 것이 있는 데도 먹지 않아서 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소대장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아니다. 가물거리는 정신이 얼른댔다. 잔물결처럼 희미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허기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렇게 간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소대장은 먹지 않고 다시 잠들면 다시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어깨의 힘은 완전히 빠져 탈골한 상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소대장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정신 줄 하나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다시 대검으로 마른 돌을 갈아 댔다. 검은 돌에 부딪치면서 의식적으로 날을 세웠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쳐들자 검은빛과 대결이라고 하는 양 그 자체로 검은 발광했다. 그 순간 소대장은 연기를 보았다.

그리고 연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푸른 빛이 손가락을 타고 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불이 붙었다. 푸른 빛은 곧 붉게 변했다.

그는 손을 뻗어 죽어 자빠진 갈매기를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감각은 오로지 털이 타는 냄새에 압도됐다.

이어서 살이 탔다. 그는 아직도 타고 있는 털과 살 사이에 대검을 박았다. 그리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드디어 살 점 하나를 발라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소대장은 그것이 입속에서 목으로 넘어가다 걸릴 것을 염려했다.

그는 어릴 적 이웃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떡을 먹다 질식해 죽은 것을 알았다. 그때 어른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먹으면 죽는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에 왜 그런 기억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소대장은 그것을 단숨에 삼키려고 했던 계획을 바꿨다. 그리고 씹을 때까지 씹었다. 소대장은 죽의 상태가 됐을 때야 꿀꺽하고 삼켰다.

그는 그렇게 갈매기 한 마리를 먹어 치웠다. 누군가 옆에서 시간을 재고 있었다면 삼십 분이 넘었을 거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소대장은 나머지 한 마리도 마저 먹으려다 그만두었다. 동네 어른들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으면 그 역시 살지 못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여러 날 굶은 소대장은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따라야지, 따를 수 있으면 따라야지. 그게 인간이야. 그는 이런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엎어진 채로가 아니라 하늘을 보고 누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