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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어톤먼트(2007) 속죄와 용서- 그 어려운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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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어톤먼트(2007) 속죄와 용서- 그 어려운 것에 대하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2.2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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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하면 용서받을 수 있나. 이 질문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 있지 않다.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크고 작고 중하고 가볍고의 문제일 뿐이다. 1935년 영국, 여기 한 소녀가 있다. 13살 소녀이니 우리 나이로 치면 14살이겠다.

그 소녀는 재능이 있고 꿈이 많다. 벌써 대본을 쓴다. 독수리 타법을 이용해 타자기 치는 소녀 브라이오니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부모는 내각에서 일하는 대단한 사람이고 그 신분에 걸맞게 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대저택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다. 위로 자상한 언니도 있고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공주가 부럽지 않다.

그런데 그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가정부에서 태어나 신분은 천하지만 능력 있고 핸섬한 로비( 제임스 맥어보이)는 언니 세실리아(키이나 나이틀리)를 사랑한다.

어느 날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보낼 편지를 브라이오니에게 주는데 당연히 소녀는 그 편지를 그대로 전해 주지 않고 뜯어서 읽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속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소녀는 놀란다. 이후 로비와 언니는 서재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그 장면을 브라이오니는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강물에 뛰어들면 구해줄 정도로 자신을 아꼈던 로비가 자신이 아닌 언니를 사랑한다. 소녀는 심한 배신감과 음란한 편지와 노골적인 사랑 표현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저 버릴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비극이 벌어진다. 강간 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로비를 그 당사자로 지목한다. 분명히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로비가 틀림없다고 말한다.

세실리아는 물론 관객들도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소녀는 단호하다. 거듭 로비가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애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경찰은 그를 데려간다.

감옥에 처박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학에서 꿈꾸던 그 많은 이상도 세실리아와 함께 할 아름다운 인생도 흘러가는 강물 위에 뜬 한 조각 낙엽에 불과하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전쟁이 터졌다. 전선은 위기이고 싸울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감옥 대신 전쟁을 택한다. 전장은 감옥보다 더 치열하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뒤바뀐다. 그곳에서 로비는 간호사로 일하는 세실리아를 만난다. 두 사람은 다시 불이 붙는다.

그래서 행복했느냐고.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해피한 인생을 마무리했느냐고. 그랬으면 죄에 대한 속죄는 조금은 가벼울지 모른다.

눈을 돌려 브라이오니 한 테로 가보자. 이제 18살이 된 그녀 역시 전쟁터의 간호사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언니가 수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곳을 알아내 편지를 쓴다.

▲ 군인이 된 로비는 간호사로 활약하는 세실리아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의 사랑과 비극은 볼수록 애잔하다.
▲ 군인이 된 로비는 간호사로 활약하는 세실리아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의 사랑과 비극은 볼수록 애잔하다.

그러나 답신은 없다. 그녀는 찾아간다. 그곳에 로비가 있다. 그렇다. 자신이 무고한 로비가 언니 세실리아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녀는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사실대로 모두 판사 앞에서 거짓 증언을 바로잡겠다고 맹세한다.

영화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갑자기 브라이오니가 할머니로 나온다. 소녀에서 간호사에서 할머니가 된 브라이오니는 이제 저명한 작가가 됐다. 그녀는 기자와 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책 제목은 영화의 제목인 어톤먼트. 그녀는 초기 치매에 걸렸다. 더는 책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책이 마지막 책이다.

책에서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녀는 책에서 진실만을 이야기 했을까. 아니면 말 그대로 허구의 세계인 소설을 썼을까.

독자들은 그녀의 속죄 이야기를 들으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불이 꺼지고 앤딩 자막이 오르고 영화관을 나서도 한동안 죄와 속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가 그것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완성도 높은 영화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돌려 말해도 다 알아듣고 그런 것이 더 여운이 길기 때문이다. 이언 맥큐언의 동명소설을 각색했다.

국가: 영국 외

감독: 조 라이트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키이나 나이틀리

평점:

: 세상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죄는 언제나 벌을 받는가.

벌을 받기 전에 속죄를 하면 그 죄는 경감되거나 사라지는가. 죄를 짓고도 당당한 사람이 있다. 죽을 때까지 그렇다. 그런 사람에 비해 속죄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는 책을 통해 속죄하고 있다. 13세 소녀에서 18살 청춘에서 늙은 할머니로 세 번의 변신을 거치면서 그녀는 속죄의 삶을 살았다.

그녀가 그린 소설 속의 로비와 세실리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언니를 찾아 갔는지, 로비는 마지막 철수 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는지 등 등 말이다.

그렇다면 만사 제쳐 놓고 <오만과 편견>으로 이미 이름을 알린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에 빠져보자. 장쾌한 인간 대 서사시 앞에 쪼그라드는 왜소한 인간이 거기 있다면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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