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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이홍전(조선후기)- 사기꾼의 배꼽잡는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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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이홍전(조선후기)- 사기꾼의 배꼽잡는 활약상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2.10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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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원을 만들고 무언가를 흥정한다. 지하철은 오지 않고 호기심에 잠깐 구경한다.

핸드백이다. 알만한 브랜드 이름이 줄줄 새어 나온다. 이름 값에 비해 가격은 헐하다. 백화점 납품하고 남은 것을 긴급처분한다고 한다.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하니 살려는 사람이 있다. 순식간에 두어 개가 거래된다. 그런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패다. 구경하다 차를 놓쳤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다시 그곳으로 눈길을 향한다. 샀던 사람들이 도로 물건을 내려놓는다. 그들은 한패다. 남을 속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들이다.

사기꾼의 역사는 깊다. 조선 후기가 배경인 <이홍전>에 나오는 서울태생 이홍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수법을 전하고 있다.

부자간에 혹은 형제간에 물건을 흥정하는 척하면서 비싸다느니 싸다느니 값을 다투며 주변을 시끄럽게 만든다.

어수룩한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와서는 진짜를 싸게 산다고 좋아하면서 얼른 값을 치른다. 하지만 속은 것이다.

은인 줄 알고 산 것이 구리나 아연이나 니켈이다. 몸보신 하려고 산 바다거북의 등은 염소 뿔이고 담비의 모피는 개가죽이다.

파는 대상만 다를 뿐 사기 치는 수법은 오늘과 다르지 않다.

▲ 이홍은 사기꾼의 원조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사기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역사 깊은 인물이다. 비록 소설속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세상과 다를바 없다. 속고 속이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 이홍은 사기꾼의 원조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사기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역사 깊은 인물이다. 비록 소설속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세상과 다를바 없다. 속고 속이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속은 것을 안 사람이 뒤쫓아 거의 따라잡을 만하면 광주리를 짊어진 놈이 다짜고짜 불쑥 뛰어나와 광주리 사려, 외치며 길을 막아선다. 그 틈에 한패는 저 멀리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사라진다.

어머나, 이홍이 살아서 지하철 근방을 어슬렁거리다 이 모습을 보면 자신의 수법을 권리금도 치르지 않고 베껴 먹는 자들에게 한바탕 호통을 칠 법하다.

이홍은 풍채가 좋다. 말재주도 그럴싸하다. 이만하면 사기꾼의 외양은 갖췄다. 처음 보는 사람이 그를 사기꾼으로 여길만한 아무런 건더기가 없다.

재물을 가볍게 알고 사치스런 옷을 입은 사람이 사기칠 리 없다고 미리 판단한다. 선입견은 그래서 나쁘다.

이홍은 당시 청천강에서 큰 수리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 만큼 어느 기생이든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온다. 그런데 안주의 기생만은 달랐다.

평양 감사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콧대 높은 그 기생을 놓고 이홍은 친구들과 내기를 걸었다. 그리고 열흘을 기한으로 길을 떠났다. 그가 어떤 결론을 냈을지는 지레짐작이 갈 것이다.

기생을 홀린 것이 첫 번째 삽화라면 두 번째 삽화는 군포를 바치러온 시골 아전이 가져온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갚을 수 없으니 죽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깜짝 놀란 아전은 이홍이 죽으면 그 죄를 자신이 받을지 모른다는 말에 그만 돈은 안 받아도 된다는 문서를 써주고 말았다. 제발 죽지만 말아 달라고 간청하면서.

이런 나쁜 놈이 이홍이다. 이홍의 집은 서대문 밖이다. 때는 춘삼월 꽃들이 늘어지게 피어나니 집 안에 있을 이홍이 아니다.

비단 청옷을 차려입고 왼손으로 각 끈을 어루만지며 다른 손에는 멋들어진 부채를 들고 어슬렁거리면 남대문으로 들어섰다.

어디 사기 칠 만 것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스님 한 분이 시주를 구하고 있었다.

딱 걸려든 스님이 세 번째 삽화의 희생양이 되겠다. 그는 스님에게 종을 만들 수 있는 커다란 놋쇠를 시주하겠다고 꼬드겼다.

그리고 공짜 술을 먹고는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술값은 스님이 냈다. 그렇게 해서 또 술을 먹었다.

서너 곳 술집을 돌자 스님의 시주 돈은 바닥이 났다. 이홍이 생각하기에 스님은 눈치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스님은 한평생 눈칫밥만 먹고 살았다고 자신이 눈치 있음을 은연중에 내세운다.

놋쇠를 얻을 것을 생각하니 돈을 다 털렸을망정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한참을 가던 이홍은 종각에 있는 보신각 종을 가리켰다.

놋쇠가 저기 있으니 가져가라고 한다. 스님이 넋이 나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평생 이홍은 이렇게 사기를 치면서 살았다.

대충 적은 것이 이 정도다. 사기꾼 이홍의 행각을 돌아보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정도다.

: 큰 사기꾼은 천하를 속인다고 한다. 임금이나 정승을 속이는 것은 그다음 사기꾼이고 백성을 상대로 사기 치는 것은 또 그다음이 되겠다.

이홍 같은 사기꾼은 백성을 속이므로 사기꾼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낮은 삼류 사기꾼이 되겠다.

자신은 사기의 신 혹은 사기의 왕이라고 자찬할지 모른다. 하지만 천하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다. 아전을 속인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이홍은 결국 사기로 귀양도 가고 벌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홍의 잘못이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한편 사기에 넘어가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 역시 사기꾼 못지않게 어떤 되잖은 이득을 바랐기 때문이다.

기생이 넘어간 것은 기생 아비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탐욕 때문이고 아전 역시 그렇다. 스님도 마찬가지다.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나 피차 매일반이라고 양비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비록 욕심을 냈을망정 그 욕심 자체로는 죄가 될 수 없다.

이 작품의 작가 이옥은 문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른바 점잖은 유교적 표현이 아닌 소설체를 정조가 문제 삼았다고 한다. ( 이 연재물에서 다룬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정조가 문체를 지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옥은 박지원과 함께 한문 소설에서 쌍벽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조선 후기 문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이옥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친구 김려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데 1760년( 영조 36)에 태어나 1812년(순조 12)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김려가 필사한 <당정총서> 권 12 ‘도화유수관소고’에 실려 있다. <심생전>, <유광억전>, <이언집>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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