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1-01-20 17:59 (수)
적들이 잠을 이기지 못할 때 소대장은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상태바
적들이 잠을 이기지 못할 때 소대장은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1.08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생각이 바뀌었다.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누구의 생명이 중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생명과 연관된 것이다. 정말로 도망가야 할 때가 오면 도망가야 한다.

이때는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그러겠는가. 적의 조준경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범위를 좁혀야 한다.

등을 보이고 달리는 것은 아니다. 땅에 바짝 엎드려 기어야 한다. 엎드리는 것은 자신 있다. 좋아하는 흙냄새를 맡으며 뒷걸음치는 일이야말로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소대장은 바짝 엎드려서 더 밀착시킬 수 없는데도 땅이 꺼지라는 듯이 배를 아래로 누른 상태에서 뒷발을 뒤로 밀면서 아래로 향했다.

고개는 적을 향했지만 동태를 살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뒤로 밀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동작이다. 부끄러울 것 없다. 생명 앞에서 그것은 부질없다.

어림짐작으로 많이 내려왔다. 앞서 보았던 작은 고개가 근처에 있을 것이다. 이것만 넘으면 된다. 그러면 적은 소대장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설사 작은 먼지가 일어 적의 침투라고 생각했어도 사정거리 밖이다. 그들은 속 편히 적이 아닌 바람이 일으킨 먼지라고 생각한다. 밤을 뜬 눈으로 세운 적들은 아침이 돼서도 자지 못하고 밤처럼 그렇게 전방을 주시했다.

그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감기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이 혼미하고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때는 먹는 것이 잠보다 중요했으나 이제는 먹을 것이 와도 그것이 밥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눈이 감기고 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오고 있다는 증거다.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제압하지 못하는 적이 살아 움직이는 적을 어떻게 처치할 수 있을까. 그들이 잠을 이기지 못해 눈을 덮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소대장은 자꾸만 뒤로 미끄러져 내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