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1-01-20 17:59 (수)
358. 메멘토(2000)- 기억 없는 남자의 복수 혈전
상태바
358. 메멘토(2000)- 기억 없는 남자의 복수 혈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2.25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멈추거나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한 번 간 시간은 그래서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추억뿐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회상할 때만 시간은 뒤로 간다. 시간을 뒤로 돌리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지난 과거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 한 사내는 그런 능력이 없다. 과거를 현재로 거스를 수 없다. 기억이 상실된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레너드(가이 피어스)를 내세워 그런 사람이 활약하는 영화 <메멘토>를 만들었다. 기억상실자가 사는 방법이라나 할까.

사고든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10분 전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독특한 자신만의 기억법을 만들었다. 메모하는 것이다. 만난 사람의 이름과 특징은 무엇인지 적는다. 사람이 오면 메모를 보고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메모가 힘들 때는 사진을 찍는다. 다행히도 영화가 나올 때는 즉석 카메라가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고 현상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리에서 빠져나갔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러나 메모는 지워질 수 있고 사진은 없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이 추가된다.

지울 수 없고 사라지지 않는 바로 문신이다. 몸에 문신을 새겨 놓으면 샤워를 하거나 팔뚝을 슬쩍 걷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단서는 종이 대신 몸에 적는다.

그가 옷을 벗으면 잔 근육이 가득한 몸 이곳저곳에 호랑이나 용이나 전갈 대신 세미 잰킨스를 기억하라.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 등의 글귀가 가득하다.

이런 상황이니 그는 때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그가 잊지 않는 하나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과 그 아내가 누군가에 의해 강간 당한채 살해됐다는 것이다.

다른 기억은 모두 사라져도 그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고달픈 인생이 살아가는 힘은 바로 그자를 찾아내 죽이려는 데서 나온다.

그의 병적인 상태를 굳이 의학적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노력을 해서도 안 된다. 영화는 남자의 그런 상태가 과연 가능한지 아닌지 따지려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고 찍고 새기는 과정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오로지 아름답고 완벽했던 아내 살인범을 살해할 계획만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려고 할 뿐이다.

▲ 기억을 상실한 남자가 기억하는 유일한 기억은 아내를 죽인자를 찾아내 복수하겠다는 기억 뿐이다. 과연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진짜 범인을 찾아내 복수를 멋지게 했을까.
▲ 기억을 상실한 남자가 기억하는 유일한 기억은 아내를 죽인자를 찾아내 복수하겠다는 기억 뿐이다. 과연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진짜 범인을 찾아내 복수를 멋지게 했을까.

멀쩡한 사람도 해내기 힘겨운 복수를 단기 기억상실자가 해내는 것이 얼마나 험난할지 보는 내내 안쓰러움이 몰려온다. 여기에 나탈리( 캐리 앤 모스)와 테디 (조 판톨리아노) 가 등장해 기억 상실자가 벌이는 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 레너드가 나탈리를 만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시간을 뒤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런 모습으로 식사하면서 수달 떨고 싶다. 코로나 19 참 대단했었지, 하고 회상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레너드 자신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는 기억 상실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확실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돌아와야 맞다. 치료의 첫 번째 과정은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너드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결코 기억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죽거나 다쳤거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는 평생을 그런 상태로 살아가도록 설정됐기 때문이다.

명확하고 딱 부러진 것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런 영화에는 흥미를 가지기 어렵다. 무엇하나 뚜렷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는 시간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역행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발사되지 않은 차 안의 총알이 총구 밖을 떠나 존 G의 심장을 뚫고 밖으로 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영화가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새에 끝나고 만다. 그것은 화면이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뒤를 모르고 어느 부분에서부터 보더라고 한눈을 팔 시간이 없다. 주인공의 행동과 주변 인물의 등장과 대화와 움직임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좋은 영화, 잘 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형식의 영화가 자칫 빠지기 쉬운 엉터리로부터 관객을 구했기 때문이다. 모자란 것 같지만 채워졌고 이해 불가인 것 같지만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이 피어스가 보여주는 연기가 실로 대단하다. 서늘할 정도로 감정이 없는 로봇 연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복수해야 한다는 일념과 초조함을 시종일관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을 그는 잘 해냈고 나머지 조연들도 자신의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국가: 미국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가이 피어스, 캐리 앤 모스

평점:

: 인간에게 기억이 없다면 현재는 존재 이유가 없다.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보존된 지난날의 나를 되살려 생각할 때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로 향해 갈 수 있다. 그런데 뭘 해도 10분 후면 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만은 확실하다.

기억이 있다면 망각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완전히 잊지는 않아도 잊어도 될 만한 기억들은 그렇게 해 버린다. 기억의 쇠퇴라고 해야 할 망각 덕분에 인간은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기억은 없고 오로지 망각만 있는 레너드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 그가 메모하고 사진 찍고 문신을 새길 때 그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는지 그와는 달리 기억을 갖고 있는 관객들은 그를 동정한다.

동정이 깊어질 때쯤 영화는 끝나고 관객들은 전직 보험 조사관 레너드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짜증이 나고 답답한 것도 뒤로 물러났다. 복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대체 알 수 없다는 갸우뚱과 함께. 마지막 부분을 맨 앞으로 이어 붙인다면 이해가 좀 더 쉬웠을까. 어쨌든 색다른 영화 한 편을 소개했으니 이것으로 만족해도 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