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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4-23 16:15 (금)
낮은 포복으로 후퇴할 때 흙의 냄새는 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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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포복으로 후퇴할 때 흙의 냄새는 늘 따라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21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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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가 훅 끼쳐왔다. 비가 와 마른 대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와는 다른 냄새였다. 물기 없는 흙냄새는 썩은 곰팡이 냄새를 닮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소대장은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어떤 냄새든 맡을 수 있는 것만해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더구나 흙이라면 어떤 흙이든 좋았다.

진흙이든 찰흙이든 가리지 않았다.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특히 어떤 냄새와도 구분되는 냄새를 좋아했다. 그 냄새는 향숙이 웃으며 다가올 때 내는 냄새였다.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냄새였다. 그것은 느닷없이 머리를 어지럽혔고 아찔하게 할 때도 있었고 화난 가슴을 스펀지처럼 가라 앉히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 모든 감정을 하나의 냄새가 지배하고 있다. 소대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열린 입 사이로 흙이 들어왔다. 입술에 묻은 흙이 침을 삼키자 침과 함께 혀에 묻었는데 그마저도 싫지 않았다.

어릴 때는 장난삼아 흙을 먹어보기 까지 했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도 했으나 대개는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입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탁 하고 침과 함께 뱉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아주 조심스럽게 중요한 것을 입에서 꺼내기라도 하듯이 혀를 살살 굴리며 침과 흙을 분리해 냈다.

또다시 엷은 웃음이 새 나왔다. 그렇게 소대장은 흙과 함께 놀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짤라에 불과했다.

그는 다시 움직였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움직일 때마다 흙은 따라왔다. 낮은 포복으로 뒤로 후퇴할 때 얼굴과 흙은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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