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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은 영화속 대사를 외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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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은 영화속 대사를 외치고 싶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2.1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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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순간적으로 자신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상황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어떤 향수와 같은 냄새였으며 동작이었다. 적진을 살핀 소대장이 임무를 완수하고 뒷걸음치고 있다.

몸을 돌려서 등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위험했고 아직 안전지대를 돌파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몸을 땅에 바짝 붙이고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땅과 내가 한 몸 같았다.

뒤로 기는 것은 할 만했다. 훈련을 해 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물러나면서도 앞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개미의 움직임처럼 아주 미세하게 이동했는데 그것은 고지의 바닥이 매우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움직임도 먼지를 일으키고 이는 적에게 발각될 위험을 노출하는 행동이었다.

소리보다 멀리서 관측이 가능한 먼지는 소대장의 위치를 알려 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이 극에 달한 적은 무슨 이상한 낌새만 차리면 미친 사람처럼 마구 총질을 해댔다.

발작적인 기침처럼 그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휘관이라고 해도 한차례 소나기가 지날 때까지는 그대로 있어야 했다. 무슨 상황인지 서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대장은 그런 총알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전투 중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후퇴하는 중에 어디서 오는 줄도 모르는 총알을 맞고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죽더라도 등이 아닌 가슴에 맞는 것이 장렬한 전사와 어울렸다.

그는 늘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상태로 자신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병사들이 죽을 때 총이나 수류탄이나 비행기에서 내리는 폭탄에 맞아 죽는 병사들을 유심히 보았다.

유심히 라고 표현했지만 바로 옆에서 죽는데 안 볼 수가 있는가.

어떤 죽음은 마치 칼로 종이를 자르듯이 깔끔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또 어떤 죽음은 진흙탕 속에 있는 미꾸라지처럼 온 종일 꿈틀 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차피 죽을 거라면 단박에 사라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때도 한두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마침 그 자리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병사가 옆에 있기를 바랐다.

그에게 몸조심해라, 혹은 내가 죽어도 너는 끝까지 살아남아라, 같은 영화 속 대사를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이 남아 있다면 엄마를 불러 보고 향숙이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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