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위해서는 손을 움직여야 한다. 손가락을 들어 펜을 잡아야 한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소대장은 쓰지 않기로 했다.
소설가나 시인도 아니고, 안 쓴다고 해서 세상이 손해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마음 편히 먹고 있자. 생각할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은가. 그것마저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하고 스스로 자위했다.
그런 만족이 얼마간 이어지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야릇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래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뱀이나 곤충은 아니었다. 발이 없거나 발이 많은 것의 감촉은 아니었다. 뱀은 손으로 잡아 보아서 알고 곤충도 그렇다. 그 느낌을 상세히 쓰라면 지금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의 손길이나 짐승의 콧 바람 같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올라오고 있는 것 만은 분명했다.
바람인가. 발가락이 아픈 사람은 바람만 불어도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발가락을 다친 적이 없다. 군화속에서 발가락은 건재하다.
간지러운 것도 아니었다. 향숙이 손으로 장난질하는 느낌도 아니다. 표충사에서 나와 우리는 근처 민박집에 들었다. 날이 어두워 인적은 끊기도 밀양 시내로 나가는 차 편도 변변치 않았다.
큰 방 하나를 커튼으로 나눠 방 두개 짜리를 얻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주 웃었으며 그때마다 향숙은 내 팔을 슬쩍 치거나 발로 종아리를 건드렸다.
그래서 뱀이나 곤충을 만진 경험으로 그것의 감촉을 알 듯이 향숙의 손길을 안다. 향숙의 손길은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몸에 닿을 때 마다 확실한 느낌을 주었다.
뱀도 곤충도 향숙의 손도 아니라면 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아픈 것인지, 아닌 것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분명히 무언가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소대장은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했다. 자신의 아래서부터 얼굴 쪽으로 오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자 또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몸이 따라왔다.
몸은 그저 생각의 부속물일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면 몸은 그대로 그림자가 되었다. 몸은 필요 없다. 소대장은 이런 극단적인 곳까지 상상을 넓혔다.
그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 중한가. 몸이란 것은 결국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그랬다. 올라오던 것이 멈췄다. 허리께인지 가슴 쪽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감각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런 느낌 없이 시간이 또 그렇게 흘렀다. 할 일이 없었으므로 소대장은 잠이나 자자고 했다. 자고 나면 무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전환치고는 잠처럼 좋은 것이 없었다. 군에 오기 전에도 그랬다. 전선에서도 잠이 보약이었다. 먹는 것보다도 자는 것이 좋았다. 심지어 굶었을 때조차도 밥 대신 잠을 먼저 청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부산 피난 학교의 천막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졸았다. 조는 것은 습관이었고 그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