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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긴 눈을 뜬 소대장은 눈꺼풀 사이로 세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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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긴 눈을 뜬 소대장은 눈꺼풀 사이로 세상을 보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0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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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송이 하나가 소대장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소대장은 미동이 없었다. 나중에는 밤 대신 밤송이가 통채로 떨어졌고 송이의 가시가 소대장의 이마에 박혔다. 밤송이는 박힌 채로 그대로 있었고 그 위로 다시 새로운 밤송이가 떨어졌다.

소대장은 눈을 떴다. 떴다기보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작은 빛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둠 아닌 빛이다. 그는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 있으나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온전한 몸인지 아니면 만신창이인지 아직은 분간할 수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상태를 확인하려 했으나 마음만 그럴 뿐 어떤 동작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동작 그만 명령을 받은 신병이 눈꺼풀 하나 겨우 움직일 정도로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이었다. 그대로 신병은 상관의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렇게 있어야 한다.

소대장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동작 그만을 외쳤는지 상기했다. 아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말을 했을 것이고 그 말에 따라 사병들은 움직이다 말고 무슨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었다.

누가 동작 그만 상태를 풀어 줄 것인가. 누구든 ‘편히 쉬어’ 명령을 내려 꼼짝 못하는 소대장의 긴장한 몸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나 마법에 걸린 왕자를 구해줄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향숙인가, 하다가 이내 향숙이는 군인이 아니잖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소대장은 중대장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아니면 누구도 ‘편히 쉬어’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는 중대장님, 하고 소리쳤다. 입을 달싹거리며 막 임관한 장교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메아리도 어떤 울림도 다가오지 않았다. 허탈했다. 그러자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소대장은 직감했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정신 줄을 놓지 않기 위해 소대장은 안간힘을 썼다. 힘이 점점 빠져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김병장,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는 총에 맞아 그르렁거리는 숨을 내쉬며 생명이 끊어지고 있는 김 병장에서 혹은 박 상병에게 황 일병에게 소 이병에게 외쳤던 소리를 자신에게 가하고 있다.

정신 차려, 이놈아.

그러자 자신의 옆에서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떴다. 정말로 감긴 눈을 떠서 눈꺼풀 사이로 세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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