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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나비의 꿈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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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나비의 꿈은 사라지고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2.08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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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는 오늘 소개할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를 기초로 만들었다.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있고 실제로 의약뉴스 지면에 평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평을 찾아 봤다. 책과 영화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해 보고 혹은 읽고 나서 받은 느낌이 어떤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8년 전인 2002년으로 돌아가는 길은 낯선 여행처럼 생소했으나 몇 몇 장면들은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학생들을 선동하는 교수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혈기 왕성한 그들은 교수의 말에 감동을 받고 떼로 몰려 자원입대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다 . 참호 속에서 나비를 만지려다 저격수의 조준경에 걸려든 것이다. 나비의 꿈이 사라질 때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의 이런 모습들이 겹쳐졌다. 영화가 더 좋은 장면도 있고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많은 부분들이 책에서 나왔다.

▲ 보급품은 군대에서 중요하다. 전장에서는 더 그렇다. 죽은 동료가 좋은 가죽 장화를 남겼다. 그것을 얻어 신고 좋아하던 동료도 죽었다. 철모를 뚫고 총알이 날아와 두개골을 박살낸다. 뼈와 살은 어디가고 없고 빈 철모에 이름모를 꽃이 피었다.
▲ 보급품은 군대에서 중요하다. 전장에서는 더 그렇다. 죽은 동료가 좋은 가죽 장화를 남겼다. 그것을 얻어 신고 좋아하던 동료도 죽었다. 철모를 뚫고 총알이 날아와 두개골을 박살낸다. 뼈와 살은 어디가고 없고 빈 철모에 이름모를 꽃이 피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도 반전을 이야기했다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분위기는 말한다고 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20살도 안 된 피 끓는 청춘들이 전선으로 향한다. 짧은 신병 교육을 받은 파울 일행은 곧바로 최전방에 투입된다.

폭탄이 날아오고 총알이 빗발친다. 부상병이 속출하고 죽은 자들이 들것에 실려간다. 그들은 이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만 어찌할 수 없다.

명령에 따라 진군하라면 앞으로 가고 후퇴하라면 뒤로 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함께 했던 학교 친구들은 하나 둘 죽어서 파울 곁을 떠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아군이 이기는지 적군이 우세한지조차 알지 못한다. 사실 그런 것도 별 관심이 없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것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먹고 자고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전선에서는 특히 그렇다. 삶과 죽음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데 우선 배부른 것이 최고다. 먹고나서야 전쟁이라는 것도 있다.

파울은 지쳐간다. 그 사이에도 수 많은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어머니를 외치며 피를 흘린다. 잘린 다리를 질질 끌고, 흘러나온 내장을 움켜잡고, 부러진 팔을 흔들면서 살기 위해 절규한다 .

시간은 흘러 휴가라는 것이 파울에게 떨어진다.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고향이 있다. 큰누나와 엄마가 살아 돌아온 그를 맞는다. 기쁨이 넘친다. 그러나 그런 기분 오래 가지 않는다.

휴가는 제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끝나면 다시 군대로 돌아가야 한다. 깊은 밤 엄마는 울고 있다. 암이 전신에 퍼져 언제 죽을지 모를 고통 속에서도 아들이 안전하기를, 다시 전선에 투입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그 간절한 기도는 대개 다른 기도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파울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전장에 있는 전우의 부모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후방 사람들은 전선의 참상을 잘 모른다. 빨리 적을 격퇴해 영토를 넓히기만 바란다. 맥주 한 잔을 사면서 교수라는 사람은 벨기에 전체와 프랑스 일부를 차지하려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외친다.

왜 전전이 지리멸멸하느냐고 다그치듯 따진다. 이곳은 파울이 있을 곳이 아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과 언쟁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도 동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복귀한 후에 중대원들이 몇이나 살아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더 열심히 싸우라고 격려한다. 파울은 다시 전쟁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부상병들이 속출한다. 그도 부상 당한다. 병동의 환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명씩 죽어 나가고 빈 자리는 밀려오는 다른 부상병들이 차지한다.

다리를 잘린 동료는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 처음으로 휴전이라는 말이 병영에 떠돈다. 전쟁이 끝나는가 , 잠시 기대감이 인다.

그러나 전선은 요지부동이다. 적들의 화력은 점 점 더 세지고 비행기 공급은 더 심해진다. 기관총과 박격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진지를 때리고 화염방사기가 등장한다.탱크가 굉음을 내면서 일렬 종대로 다가온다 .

밤에는 조명탄이 대낮처럼 불을 밝힌다(필자가 전방에 근무할 때 근접 거리에서 터트리는 조명탄을 보았다. 한겨울이었고 바람한 점 없는 날이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군가를 목청껏 불렀다. 그 때 검은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기를 피우며 수 분 동안 빛을 내뿜었던 조명탄의 위력과 그 위력이 주는 섬뜩한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저들은 왜 멈추지 않는가.

파울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명령에 따를 뿐이다. 마침내 용감하던 중대장도 죽었다.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중대장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남은 동료들도 다 죽었다. 파울 혼자만이 살아 있다.

앞서 영화 속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비를 잡으려다 죽는 파울은 명장면을 연출했다( 죽음을 두고 이런 표현써서 미안하지만 영화역사상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기에).

그러나 책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파울이 나비 채집가이며 표본을 쳐다보는 장면이 휴가 중에 잠시 언급되지만 죽을 때 그 곁에 나비는 없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 총인지 포인지 포의 파편인지 화염 방사기의 불인지 탱크포인지 탱크포에 장착된 50 기관총인지 아니면 육박전 끝에 적의 칼끝에 심장에 뚫려서인지 그도 아니면 지뢰를 밟고 나무에 팔, 다리를 걸고 죽었는지 모른다 .

다만 죽었다고 표현될 뿐이다.

사령부는 그가 죽은 그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으로 보고한다. 겨우 파울이 죽었을 뿐이다. 전선에 이상이 있을 리 없다. 그 보고서는 틀리지 않고 맞다. 그러나 주인공이 죽었으니 책은 더 나아가지 않고 끝난다.

: 이념이라고 할 만한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조자 잘 보이지 않는다.

동료가 옆에서 죽어 나가는데도 적의나 분노보다는 그런 사실만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상관에 대한 비난도 그렇게 크지 않다 .

장교에 대한 욕도 거의 없다. 그를 사지로 몬 선생에 대한 역겨움도 그저 그런 정도다.

한 개인을, 어떤 집단을, 적국을 그렇게 하지 않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되레 그것이 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한다.

전쟁 문학은 이 작품 이후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것 없이도 전쟁의 황량함을 그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나치 정권은 이런 책과 이런 작가를 미워했다. 레마르크는 박해를 피해 미리 스위스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그가 떠난 후 더 끔찍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더 많은 병사들이 죽고 다쳤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마르크의 또다른 걸작 <개선문 >도 다음 기회에 소개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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