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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세븐(1995)-인간이라는 원죄를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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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세븐(1995)-인간이라는 원죄를 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2.07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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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7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행운을 나타내기도 하고 10의 확실한 절반 이상을 뜻하기도 한다.

일주일 일하고 하루 쉰다는 성경적 의미를 생각하면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거기에 7가지 죄악을 더하면 영어로 세븐은 인간 존재의 문제까지 다다른다.

말이 나왔으니 7가지 죄악을 열거해 보자. 기독교적 신앙이 없어도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단어들이다. 그 단어들을 열거할 때마다 속으로 찔리는 느낌이 들라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탐식, 탐욕, 나태, 음란, 교만 시기, 분노를 쓰고 보니 요즘 세상에서는 되레 죄악이 아닌 칭찬의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세월은 옳고 그름까지 바꾸어 놓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것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바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날 거구의 사나이가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이 사건 현장에 투입된다. 부검을 위해 시체를 네 명이 들어올려야 할 정도로 무거운 사나이는 탐식으로 인해 몸이 그렇게 됐다.

많이 먹은 것이 죄가 된 것이고 죄를 지었으니 법이 처벌하지 못하니 누군가 대신 그 일을 했다.

그는 발이 철사로 묶여 있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먹었다. 얼마나 먹고 토했는지, 무엇을 먹였는지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친절한 평이라고 해도 관객이 보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한다.

잔인하게 죽었다는 것은 알려 주고 싶다. 다른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등 뒤에서 총 한 방으로 깔끔하게 죽인 것이 아니다.

범인은 지금까지 이런 살인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방법을 동원했다.

받아쓰기 좋아하는 언론은 신이 났고 대중들은 공포에 떨었다. 월요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화요일에도 사건이 터진다. 당연히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도 그렇다. 벌써 5명이 희생됐다.

▲ 시기의 대상이면서 분노한 자가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이런 저런 생각거리를 많이 준다. 내가 내린 결론은 '착하게 살자' 이다.
▲ 시기의 대상이면서 분노한 자가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이런 저런 생각거리를 많이 준다. 내가 내린 결론은 '착하게 살자' 이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탐식은 언급했으니 그다음에 나오는 탐욕, 나태, 음란, 교만한 자들이 범인이 그렇다고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처형됐다.

살해됐다, 가 아니고 처형됐다고 했으니 어떤 종교적 이미지가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형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범인이 이토록 날뛰는데도 잡지 못하고 있을까. 그들이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련한 형사역의 모건 프리드먼은 범인의 실체에 접근한다. 살해 현장에는 언제나 7대 악에 대한 표현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범인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다혈질이지만 의협심이 강한 중참 형사역의 브래드 피트는 그런 선배를 따라 다니면서 범인 체포의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 단테의 ‘신곡’을 읽거나 성경 구절 해석을 통해 범인이 남은 시기와 분노에 해당하는 두 건의 살인을 더 저지를 것을 직감한다.

알고도 잡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지만 영화에서조차 그러면 안 된다. 형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전에 범인을 잡고자 한다.

선배 형사는 일주일 남은 은퇴를 앞두고 깔끔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싶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치 않으며 후배 형사에게 자신의 모든 경험을 들려준다.

영화는 중반을 지나 막바지로 치닫는다.

이때 작은 반전이 일어난다. 범인이 스스로 자수한 것이다. 싱겁다. 이러려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냉혹한 범인 역의 케빈 스페이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짧게 깎은 머리, 단정한 차림새, 절도 있는 언어 사용, 흐트러지지 않는 몸가짐(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그 범인 그대로다)이 과연 냉혹한 킬러의 모든 것을 갖췄다.

그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두 건의 살인 사건 현장으로 형사를 몰고 간다. 차 안에서 그는 형사의 비위를 건드린다. 말로써 시기하는 대상에게 분노를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브래드 피트는 조롱당하고 무시당한다. 말장난 같은 범인의 질문과 대답은 점차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결판 날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몰고 간다.

황량한 사막, 전선의 첨탑, 헬기의 프로펠러 소음 등으로 심장은 더욱 고조 되는데 멀리서 뿌연 먼지를 날리며 트럭 한 대가 다가온다.

트럭에서 내린 그는 다혈질 형사에게 배달된 물건을 주고 떠난다. 배달된 소포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물건의 종류가 밝혀지만 짐작이 갈 만하다.

고참이 상자를 열어 본다. 당연히 놀란다. 피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신체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희생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이 따른다.

상자의 시체는 시기와 연관이 됐을터. 그렇다면 분노는 어디에 있는가.

분노를 찾으면 미스터리한 영화의 실체적 진실은 드러난다. 마지막을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스팅>의 그것만큼 매력적일까, <식스 센스>처럼 소름이 돋을까.

국가: 미국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모건 프리드먼, 브래드 피트

평점:

: 다혈질 형사의 부인역으로 기네스 펠트로가 나온다.

하는 일은 늦는 남편을 의심하는 그저 그런 가벼운 일이다. 임신했고 그로 인해 고민이 많다( 이 영화 출연 이후 기네스 펠트로는 우리가 다 안는 그런 스타가 됐다).

그런 사실은 남편은 모르나 선배 형사는 안다. 선배가 임신 사실을 안 것은 분노의 범인이 누가 될지를 예측하는 복선이다.

사건이 종결됐다. 모두 7명이 죽었다. 그동안 매일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무지개는 뜨지 않았지만 세상은 맑게 개었다.

이로써 마침내 7대 악은 사라졌는가. 허무한 질문을 해보는 것은 지금도 악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죄를 타고난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기회는 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쉽게 잊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전도연이 울부짖는 장면이 오버랩 됐다.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지 신인지, 피해자인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55년 뉴욕에서 실제로 일어난 ‘조디악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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