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6-25 23:29 (화)
소대장은 자신의 기억에 자신이 없었다
상태바
소대장은 자신의 기억에 자신이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03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는 앞을 보지 않고 그냥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다. 전방에 있는 적을 보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적이 쏘아 날아오는 총알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곧바로 돌진하는데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죽음 직전에 공포하나를 더 달고 저승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곧바로 달려드는 수류탄을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누워있는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면서 털컥하는 소리를 듣는 귀는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또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동공의 확대는 또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역시 비참한 것ㅇ리다.

죽음의 직전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굳이 기억 속에 넣고 싶지 않았다. 준비 없이 느닷없이 죽는 것처럼 뒤통수나 등 뒤를 관통하는 총알이 차라리 더 나았다.

그러면 들어오는 총알은 보지 못했을망정 나가는 총알을 볼 수 있다. 아, 내가 총을 맞고 세상을 하직하는구나. 맞아보니 과연 세구나. 이것이 더 좋을 것이다.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을 나무랄 이유가 없다.

특히 그것이 죽음을 앞둔 시점이라면 말이다. 소대장이 전방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적을 보지 않는 것이 보는 것보다 한결 낫다는 생각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계속 뒷걸음질 치는 자신을 발견했다. 생존 본능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안다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쟁의 경험은 이런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어떤 것이 삶과 죽음을 갈라 놓는지 판단하게 한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아래로 미끄러지려고 할 때 정말로 무슨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틀림 없었다. 총이겠지. 아니면 수류탄이거나.

그는 감전된 듯 그대로 몸을 땅에 박았다. 마치 땅과 자신이 떨어져 있지 않고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그렇게 땅과 붙었다. 피부에 붙은 붕대처럼 서로 떨어지면 큰일이 날 것처럼 소대장은 땅에 코를 박았다. 땅 샘내가 났다.

흙에서 퍼지는 냄새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코로 들어왔다. 썩어가는 냄새와는 달랐다. 인상을 쓸 필요도 고개를 돌릴 이유도 없었다.

아예 땅속으로 코가 들어가도록 땅에 코를 들이밀었다. 흙이다. 땅이다. 얼마 만인가. 소대장은 흙에서 고향을 보았다. 표충사 경내를 도는 향숙이가 나타났다.

윗주머니에 손을 쑥 찔러 넣은 향숙이는 종종걸음으로 신난 아이처럼 돌아다녔다. 그때도 그랬던가. 소대장은 자신의 기억에 자신이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