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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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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01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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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걸음질 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발자국 뒤로 가다가 그는 상체가 위로 솟아오르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곧 상황파악이 됐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았기 때문인데 경사진 고랑에 몸통이 걸린 것 같았다.

소대장은 들린 상체를 떨어뜨리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아래로 다시 밀어 내렸다. 그러자 몸이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먼지가 일었다. 아니 먼지가 난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적에게 들켰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멀리 가지 않아도 먼지는 먼 곳에서도 잘 보였다. 총소리와 쫓아오는 적의 함성이 귓전을 때렸다.

그러나 환청이었다. 소대장은 고랑 속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기다렸으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턱에 닿던 숨이 멈추자 소대장은 그때서야 자신이 어떤 물컹한 물체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몸에 느끼자 신체의 다른 감각들도 살아났다. 먼저 다가온 것은 냄새였다.

그는 자신을 얹고 있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막 썩어가려는 사체의 시큼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기 때문이었다. 냄새만으로도 그는 그것이 어느 정도 부패 상태에 이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 정도 지난 것 같았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냄새는 가리지 않았다. 모두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기침이 나오려고 했다. 발작적으로 총알처럼 튕겨 나오려는 그것을 입으로 막고 소대장은 다시 뒷걸음질 쳤다. 자신을 받치고 있는 것에서 한시라도 빠져나오고 싶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것은 소리를 자꾸 내는 것은 이로울 것이 없다는 본능에 따른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그러나 때때로 본능을 앞서는 이성이 다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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