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19 16:48 (화)
올라 갈 때 보다 내려 갈 때 적의 눈에 잘 띄었다
상태바
올라 갈 때 보다 내려 갈 때 적의 눈에 잘 띄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1.26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우 1분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낀 것은 생사의 기로에 선 목숨이 위태로웠고 극도의 긴장감이 온몸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몸이란 그런 것이다. 늘 일정하지가 않다. 기계처럼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지 않는다. 30분처럼 느껴졌으나 겨우 1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 1분은 우리 인생에서 얼마만 한 가치가 있을까. 소대장은 그런 생각을 했다. 찰나에도 죽을 수 있다. 탕, 소리와 함께 삶은 이승을 끝내고 저승 생활을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죽을 때 그 죽음은 그냥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처럼 죽을 때는 그냥 죽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목숨은 무겁지 않고 가벼운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워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흩날린다.

떠돌다가 나무에 걸리기도 하고 냇물에 쓸려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떠내려간다. 그러니 일 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무사히 내려가면 작전을 수월하게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을 뒤로 쫓아내고 적기 대신 태극기를 꽃을 수 있다.

작전은 무사히 완수돼야 하고 그것이 자신의 임부였다. 그 순간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누군가 국기를 게양할 때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설사 사단장이라고 해도 못 들은 척하고 줄을 위로, 위로 잡아 당길 것이다.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동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린다 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말에 대한 대답이 뭐 그리 중요한가. 오직 승리의 함성만이 메아리 친다. 소대장은 그런 생각을 할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한다. 무려 나는 소대장이 아닌가. 일개 병사도 아니고 소대원을 책임졌으니 자신은 작전의 성공을 중대장에게 알려야 했다.

머릿속에 그려진 적의 위치와 기관총이 향하고 있는 곳을 말하면 중대장은 즉시 작전 명령을 내릴 것이다.

머리가 빠른 그는 미리 서너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벌써 작성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건 그는 망설임이 없다.

작전을 내리면 병사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들고 이렇게 소리친다.

명령에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

소대장은 중대장이 권총을 든 손을 하늘로 쳐들고 흔들어 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번 그런 행동을 했다. 그래서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귓전을 울렸다.

자, 절반은 성공했다. 그는 갑자기 생긴 자신감으로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속으로 가늠했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적의 눈에 띌 가능성이 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