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의 작전 지시를 받은 소대장들은 각기 소대로 흩어졌다.
여기서 작전은 말이 작전이지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위로 밀고 올라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회로는 차단됐다. 오로지 경사가 급한 쪽만이 유일한 공격 루트였다.
공중의 지원을 받는 것은 무의미했다. 거의 피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폭격은 적도 죽이지만 아군도 피할 수 없었다.
중대장은 고민 끝에 공중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9부 능선까지 오른 부하들의 생명을 아군의 폭격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백병전에 가까운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이기는 자가 소이산을 차지 할 수 있다. 중대장은 그러고 싶었다. 한 때 차지 했다가 빼앗겼을 때는 원통해서 밤잠을 자지 못했다.
원래 내것인 것을 다시 찾았다가 다시 내 것이 아닌 것이 됐을 때 중대장은 깊은 패배를 느꼈다. 이제 그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그는 소대장들을 물리치고 나서 저들을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승산이 있다고 다짐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도 돌아봤다. 총신이 짧은 기관총을 옆에 끼고 허리춤의 권총도 확인했다.
그도 전투를 할 것이다. 최후의 순간에 적의 숨통을 끊고 다시 태극기를 자신의 손으로 올리고 싶었다. 그는 소대장들을 각가 위치로 산개 시킨 후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어떤 힘을 느꼈다.
자리로 돌아온 소대장들은 분대장을 모았다. 앳된 얼굴의 그들은 공포감에 혹은 체념에 혹은 간혹 보이는 용기가 뒤섞여 어떤 것이 진짜 그들의 얼굴인지 알기 어려웠다.
숨을 곳을 확인 한후 돌격하라.
소대장은 돌격 대신 숨을 곳을 먼저 말했다. 돌격은 죽음이고 숨을 곳은 삶이다. 살아야 돌격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소대장의 말에 분대장들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장은 그런 분대장들에게 앞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엄폐물을 확인하고 그곳에 도착하면 반드시 더 나아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추라고 지시했다.
그것이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분대장들이 돌아가고 1소대부터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위쪽에서 아래로 콩 볶는 듯한 총알 세례가 퍼부어 졌다.
몇 몇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진 자들은 경사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아래로 몇 바퀴 굴러 떨어졌다.
떨어지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병사들은 알기도 했고 모르기도 했으나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들과 같이 굴러 가면서 그들을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 자기 자신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 부상병은 각자 알아서 부상 위치를 손으로 눌러야 했다.
피가 쏟아지면 손바닥으로 막아야 했고 내장 뜅기쳐 나오면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도 그들 스스로 해야 했다.
아직 총알을 맞지 않은 자들은 앞으로도 맞지 않기 위해 엄폐물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겨우 5미터 전진했을 뿐인데 적의 반응은 신경질 적이었고 엄청난 화력으로 화풀이를 해댔다.
소대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대원 전원의 몰살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가운데 자신도 포함될 것이다. 그는 엄폐물에 더 오래 머물도록 명령했다.
자신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한 발짝도 위로 전진하지 말 것을 재차 지시한 것은 죽음의 순간을 조금 더 연장하기 위해서 였다.
연장된 죽음은 고지 탈환에 유리하다는 판단도 동시에 했다. 급하게 서둘러서 좋을 일은 없었다. 엄폐물에서 대원들은 각자 총기의 상태를 확인했고 실탄의 유무를 점검했다.
탄약이 부족한 자는 죽은 자의 총에서 총알을 빼냈고 자신의 총이 불량하다고 느낀자 역시 죽은 자의 총과 자신의 총을 맞바꾸었다.
바뀐 총을 들고 어떤 병사는 영점을 잡으려는 듯 정해진 어떤 곳을 향해 조준 사격 흉내를 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시 전의를 다졌다.
돌격이 멈추자 적들도 총쏘기를 중단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총알을 아켜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