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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126. 돌다리(1943)-아버지와 아들의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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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돌다리(1943)-아버지와 아들의 간격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1.17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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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는 나무다리에 비해 튼튼하다. 오래도록 잘 버틴 돌다리가 무너져 내리자 아버지는 자청해서 돌다리를 고친다.

마을 사람들도 가세해 어느새 멋진 돌다리가 완성됐다. 나무다리가 있는데 굳이 돌다리를 왜 만드는지 아들은 궁금하다.

너도 그 질문이냐. 아비는 말한다.

조부가 증조부를 위해 만들었던 다리다. 내가 이 다리를 건너서 공부를 했고 가마 타고 어머니가 시집왔고 네가 서울 갈 때도 이 다리를 건넜다. 내가 죽으면 이 다리를 건너서 묻어다오.

아버지는 다리에 애착이 강하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돌다리를 통해 이어져온 이런 추억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힘들게 나무다리가 있어도 돌다리를 고쳤다.

아버지는 돌다리외에도 땅에 애착이 강하다. 땅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살아 있는 그 무엇처럼 정성들여 농사를 짓는다. 밭도 논도 틈만 나면 돌보니 주변에서 이 만한 땅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들은 그런 땅을 팔았으면 한다. 육십이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기에는 지금 살고 있는 서울집이 부족하다.

그래서 땅 판 돈으로 멋진 양옥 집을 사려고 한다. 마침 가격도 저렴한 것이 나왔다. 3층 집을 구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의 규모도 커지고 환자를 더 많이 받아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이 같은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천금을 준대도 절대로 땅을 팔지 않겠다고 되레 아들에게 화를 낸다. 아버지가 손수 이룩한 밭이며 할아버지가 손에 피를 묻히며 피땀으로 산 논이다.

논밭을 팔기는커녕 그곳에 가서 절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호통을 친다. 뉘 덕분에 서울 유학을 가고 의사가 됐느냐고 핀잔이다.

땅을 파는 것은 땅을 우습게 아는 것이고 하늘을 파는 것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땅에 관한 지론이다.

▲ 돌다리는 아버지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땅도 마찬가지다. 큰 돈을 번다고 해도 절대 땅은 팔지 않겠다고 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을 느낀다.
▲ 돌다리는 아버지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땅도 마찬가지다. 큰 돈을 번다고 해도 절대 땅은 팔지 않겠다고 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을 느낀다.

그런 아버지가 나 죽을 때는 땅을 팔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파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큼 땅을 사랑하고 정성으로 가꿀 진정한 농부에게 빌려 주겠다는 것이다.

건넌 마을 용문이는 저렇게 좋은 땅에서 한 해만 농사 한 번 지어 봤으면 하는 소원을 하고 있다. 그러면 농군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겠다고.

덕길이 같은 사람은 길바닥에 나 앉을망정 우리 땅을 사려고 덤빌 정도로 좋은 땅이다. 그만큼 아버지의 땅은 기름지고 보기에도 좋다. 그런 땅을 팔아서 병원을 늘리는데 보태고 싶지 않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자식의 욕망을 들어주지 못해 맘이 아프고 섭섭하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물러설 수 없는 신념 같은게 있다. 그걸 버리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이렇게 나오자 아들 창섭은 더 할 말이 없다. 계획하고 온 것이 다 물거품이 됐다. 돈 만 있으면 땅은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아버지가 고집을 부린다.

창섭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세계와 아버지 사이는 격리돼 결별하는 심사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울로 떠난다. 아들이 서울로 갈 때 아버지가 고친 돌다리를 건너서 간 것은 물론이다.

창섭이 떠나고 다음 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누구보다 먼저 돌다리를 보러 나온 영감은 제대로 고쳐진 것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로 이도 닦고 세수도 했다. 속의 모든 것이 씻겨 나가는 듯이 시원하다.

: 한국 대표 단편 작가인 이태준은 1930년대 순수문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단편 <돌다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신념이 대결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젊은이의 돈과 늙은이의 땅이 서로 부딪친다. 결국 땅이 돈을 이겼다. 나무 다리가 있음에도 돌다리를 고친 것은 어떤 전통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 다리는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다녔던 길이다. 지금은 자신이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들이 서울 가서 의사로 살지만 자신만큼은 이 돌다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땅에 대한 철학이 이처럼 잘 정돈된 아버지의 논리 앞에 아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땅은 소작주고 자신은 문서만 있는 지주가 될 터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간극은 좁힐 수는 있어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구순이 넘은 아버지가 물꼬를 보고 밭을 일구는 모습이 선하다. 소설 속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도 땅은 절대 팔지 말라는 유언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절대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창섭이 아버지와 간극을 느꼈듯이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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