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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19 18:50 (화)
두통이 조금 사라지자 소대장은 다시 철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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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조금 사라지자 소대장은 다시 철모를 썼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1.16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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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점점 심해졌다. 가팔라지고 있다는 것은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대장은 산의 8부 능선에서 돌격을 잠시 멈추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힘을 썼다.

병사들은 지쳤다. 총에 맞아 죽기 전에 지쳐서 죽을 지경이었다. 중대장은 마지막 힘을 짜내기 위해 진격을 잠시 멈추었다.

소대장은 명령에 따라 소대원들을 조금더 안전한 쪽으로 산개시키고 다음 작전을 기다렸다.

그 기간은 불과 3분이 채 되지 않았으나 아주 길고 지루한, 어떤 미련한 만남을 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바보 같은 순간이었다.

자신을 방어할 만한 은폐물을 찾아서 대원들은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알아서들 숨어야 했는데 그런 명령이 없었음에도 알아서잘들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물체는 적의 조준 사격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저격수가 있다면 지금쯤 바람과 거리를 잰후 조준경을 맞출 것이다.

이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소대장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나무 뒤로, 바위를 엄폐물로 삼으라고 소리쳤다.

몇 몇 병사는 움직여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나 대개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여기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거나 나갔다가 되레 총을 맞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일부는 그러거나 말거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조금 더 쉬게 하기 위한 심사 때문에 그 자리에서 송장처럼 가만히 있었다.

숨이 고르게 쉬어지면서 소대장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이동할 때는 몰랐는데 가만히 있으니 극도로 피곤해 졌다.

그는 몸에 있는 모든 피가 머리로 쏠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놔두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 철모를 벗고 손으로 아픈 머리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 지압했다.

할 수만 있다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고 싶었다. 위에 몰린 피를 아래로 내려 보내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총기를 손질하고 탄약을 챙기면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데 물구나무는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았다.

그럴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소대장의 머리는 다시 깨질 정도로 아파왔다. 순식간의 두통이 얼마나 강했는지 차라리 이곳으로 총알이 관통해 나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기를 한 1분 정도 한 것 같다. 그러자 두통도 이유없이 조금 가셨다. 이유없이 와서는 이유없이 사라졌으므로 소대장은 그 이유를 알 지 못했다.

조금 아까 가졌던 공포에 가까운 긴장도 연줄 풀어지듯이 풀렸다. 소대장은 다시 철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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