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0-12-04 19:01 (금)
125. 인간문제(1934)- 강경애의 꿈은 다가오고 있나
상태바
125. 인간문제(1934)- 강경애의 꿈은 다가오고 있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1.04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테스 형에게 물어도 해답 없는 것이 인간문제다.

기원전 사람 소크라테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강경애는 <인간문제>에서 차근차근 해결해 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험악하고 힘들고 굴욕으로 가득찼다.

배경은 용연마을이 되겠다. 조선 땅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곳이다. 지주 덕호가 있고 소작농들이 있다.

지주는 돈을 무기로 소작농을 부리고 소작농은 먹고 살기 위해 지주에게 바짝 엎드려 있다. 법이 있다면 그것은 덕호의 것이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소작농이 되겠다.

그 어디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소작농들은 인간문제 특히 굶지 않고 하루를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늘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 약점을 알고 있는 지주 덕호는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한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조선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왜놈들의 수탈도 부족해 지주에게까지 농락당하는 소작농들의 한숨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귓전을 맴돈다.

소작농의 딸 선비는 이름답게 선비처럼 곱고 마음씨가 착하다. 이런 성품은 잘 살기보다는 못 살기 십상이다.

예상대로 그는 가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덕호의 명령으로 다른 소작농의 대금을 독촉하러 갔다가 자신보다 처지가 궁한 것을 보고 이자를 받아 오기는커녕 되레 돈을 주고 온다.

▲ 용연마을에 있는 연못 원소는 선비와 첫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원소의 추억이 그리움이 아닌 절망인 것은 두 사람이 합쳐지지 못하고 선비의 죽음과 첫째의 구속으로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 용연마을에 있는 연못 원소는 선비와 첫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원소의 추억이 그리움이 아닌 절망인 것은 두 사람이 합쳐지지 못하고 선비의 죽음과 첫째의 구속으로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고리대금 욕심에 들떠 있던 덕호가 보기에 선비 아버지는 죽어도 싸다. 그래서 죽도록 팼고 결국 죽었다.

겨우 1원 때문에 그렇게 됐다( 덕호는 1천 원짜리 피아노를 딸을 위해 선뜻 장만했다). 선비 어미 역시 그 여파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고아가 된 선비는 덕호의 몸종으로 들어가고 덕호의 딸 옥점은 그와 친구로 지내기보다는 하인으로 부린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옥점은 어느 날 신철을 데려오고 선비를 본 신철은 옥점보다 선비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런 가운데 덕호는 선비를 차지하고 옥점은 신철이 선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엄마와 합작으로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선비는 도망친다. 자신에 앞서 덕호의 첩이 됐다가 자신처럼 쫓겨나 서울로 간 간난이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간난이는 그 옛날의 간난이가 아니다. 계급 사상 교육을 받은 간난이는 인천의 공장에서 파업을 모의한다.

외부와 공장 내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간난이는 선비에게 임무를 넘기고 자신은 공장을 빠져나간다.

그즈음 첫째는 이미 계급 투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덕호의 행패에 작은 쟁의를 일으켰던 첫째는 주재소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후 어느 날 마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첫째가 신철로부터 사상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다.

시간을 뒤로 돌리면 첫째는 선비를 그리워한다. 공장에서 언뜻 선비를 알아보고 어릴 적 사랑했던 그 마음이 다시 피어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살아서 재회하지 못한다. 공장 노동자로 하루 하루 버티던 선비는 돈을 모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폐병에 걸려 그만 죽고 만다.

한편 경찰에 체포된 신철은 학교 친구인 판사로부터 전향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는 석방돼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취직도 그럴듯하게 한다.

여기서 부잣집 딸은 작가가 딱 집어 내지는 않았으나 옥점으로 봐야한다. 감옥행 이후 신철의 마음은 선비에서 옥점으로 기울어졌다.

어쨌든 신철은 정해진 인텔리의 길을 갔다. 그러면 먹고 사는 인간문제는 누가 해결하나.

답은 첫째와 같은 노동자이다. 당시 이 같은 파격적인 주장을 한 강경애는 지난번 단편 <지하촌>으로 소개했다.

그때 빠진 흥미 위주의 내용으로 덧붙이면 국문학자 양주동과 1923년 만나 동거하다 헤어졌고 그 이후 양주동에 대한 비판문을 썼고 공산주의 운동조직과 연관됐다. 그런가하면 김좌진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설이 있다(펴낸 곳 창비 강경애 연보 참조).

: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지주와 소작농, 인텔리와 노동자가 등장하면 대개는 파국이다. <인간문제>도 그 파국에 관한 이야기다.

비단결같이 곱고 천사같이 아름다운 주인공 선비가 죽었으니 해피 앤딩은 아니다. 그러나 살인이나 방화 같은 공격적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체제에 대항하고 마침내 불을 질러 집을 태우고 낫으로 지주를 찔러 죽이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대응은 없다.

읽다 보면 선비가 신철의 도움으로 자신을 유린한 덕호를 죽이지 않을까 미리 짐작해 보는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기와집을 태우고 곳간을 부순 다음 소작농들에게 흰쌀을 나눠 주지 않을까 하는 결말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 어릴 적 함께 자란 옥점이의 선비 학대에 대한 보복으로 옥점을 선비가 아닌 그가 좋아하는 신철의 손에 죽게 만드는 상상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강경애는 그런 극단적 상황은 피했다. 그리고 나직이 그러나 강하게 인간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인텔리가 아닌 첫째와 같은 노동자를 꼽았다.

이 소설이 나오고 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바뀐 것도 많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이중적 구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지주는 사업가로 소작농은 직장인으로 달리 부르고 있다.

지금은 서로 대결 구도나 종속 관계라기보다는 협력과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다. 강경애가 꿈꾸던 그런 세상이 더디지만 다가오고 있다고 봐야 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