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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12-03 17:06 (목)
우리가 그 전에 할 일은 백마고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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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전에 할 일은 백마고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0.21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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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를 벗었다. 그럴 여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러고 싶었다. 발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했다.

천천히 하주 천천히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필수는 손에 주는 힘을 느리게 가져갔다. 두 발에서 군화가 벗겨져 나갔다.

느리더라도 가는 것이 시간이고 벗으려고 했던 힘이 느리게나마 작동했으므로 군화는 마침내 발과 분리됐다. 그는 벗은 군화를 한쪽으로 밀었다.

전장을 향해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는데 얼마나 지쳤는지 바닥이 많이 헤져 있었다. 다행히 찢어져 나간 곳은 없었다.

돌격 명령을 하면서 고지를 점령 할 때 언덕에서 뒤로 미끌어진 것은 바닥이 없는 군화 때문이었다. 대대장의 군화가 이 정도이니 병사들의 것은 보지 않아도 알만했다.

그는 벗은 나머지 한쪽의 군화를 들어서 이미 바닥에 있던 나머지 한쪽 옆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부관에게 이거 하나 챙기라고 말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을 안 그는 짧고 힘찬 대답으로 그것을 만회하려고 했다. 언제나 자신 곁에 있는 김군호 대위에게 필수는 혈육을 나눈 동생 같이 대했다.

전쟁이 끝나고 둘이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그는 나의 의형제가 될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운 같은 것을 믿는 필수는 그런 것이 자신의 생명과도 연관 될 수 있다는 조심성 때문에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수백번도 더 다짐했다. 녀석을 끝까지 챙기리라.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필수는 자신은 이제 말뚝 군인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도 군인은 필요할 것이다. 자신처럼 경험 많은 군인은 어디에서도 쓰임새가 있다. 부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단장이 되면 대대를 맡길 작정이다.

다음 진급에 그를 소령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면 부관 자리는 다른 사람이 오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군호의 진급을 뒤로 미룰 생각이 없었다.

이 시국에 진급하는 것이 유리하다. 휴전이 되고 이런저런 이유가 생기면 진급 심사도 까다롭다. 그는 이런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사단장도 이런 점을 감안해 그를 대령까지 끌어 올렸던 것이다.

군화 위에 그는 벗은 양말을 놓았다. 군화를 벗을 때와 마찬가지로 양말을 벗을 때도 서두르지 않았다. 양말은 뒤축이 구멍이 나 있었고 다른 쪽은 곧 그렇게 되려고 얇게 닳아 있었다.

필수는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보고 있던 부관에서 이번에는 챙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군화와 함께 새 양말도 보급품으로 신청할 것이다.

언제 도착할지는 모른다. 후방의 보급은 전방으로 오는데 오래 걸린다. 물자 수송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는 것이니 그러려니 한다.

필수는 습관적으로 양말을 옆으로 밀어 놓기 전에 입가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고약한 것이 이전과 다를 바 없으나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양말을 벗을 때는 항상 그것을 코에 갖다 대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시큼한 냄새가 코언저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냄새가 가실 즈음 그는 발을 내려가 보았다. 찬물에 오래 담가 쪼그라든 것처럼 발은 옆으로 퍼져 있기보다는 안쪽으로 몰려 있었다.

군화가 오랫동안 발을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데 그는 펴려는 듯이 발을 서너 번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하얀색의 발등이 점차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죽었던 발가락들도 살아났다는 듯이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벗었던 역순으로 양말을 신고 군화를 발에 집어넣었다. 끈을 바짝 당겨 조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구부릴 때 부관이 다가왔다.

대대장님, 사단장님 호출입니다.

무전기에서 사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단장은 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이 적을 뒤로 밀어붙일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러나 그러면 많은 아군의 피해가 발생한다. 사단장은 그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필수는 휴전이 임박했는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살려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 말을 차마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는 간단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조금 쉰 병사들이 어디서 생기가 돌았는지 집할 할 때는 신병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이는 병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숫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가 될지 필수는 답답했다. 그러나 말은 달리 나왔다.

엄숙하고 단호한 말투로 전투 준비를 내렸다. 북으로 다시 돌진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붉은 피가 사그라들고 있는 한탄강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마치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잘 있거라 속으로 한 번 되뇌기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직각으로 깎인 단층들의 기묘한 모습을 보았다.

저것들은 감상할 만한 풍광임에 틀림없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말 할 때가 아니었다. 적벽에 대고 그는 또 한 번 잘 있거나 속으로 외쳤다.

우리의 목표는 김일성 고지 점령이다. 그 전에 할 일은 백마고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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