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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7 12:06 (월)
필수는 사단 사령부에 적의 후퇴를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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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는 사단 사령부에 적의 후퇴를 보고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0.1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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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흘린 사람은 죽었다. 몸 안에 있어야 할 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피가 나가면서 산소도 함께 빠졌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사람을 숨을 쉬기에 힘들어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물 위에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였다. 백 미터 전력 질주를 하고 나서 참았던 것을 한 꺼번에 몰아쉬는 그런 숨소리가 옆에 있는 사람의 귀를 강하게 때렸다.

남자의 몸에서는 산소만 빠져나간 것이 아니었다. 피를 돌게 하는 영양분도 함께 나갔고 남자 구실을 하는 호르몬도 덩달아서 몸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남자의 사내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길쭉한 것도, 두 개의 둥그런 것도 사내의 것이라기보다는 3살 소년의 것처럼 아주 작아져서 필시 그가 살아난다고 해도 사내구실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빠져나간 것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으면서도 피를 계속 흘렸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전부 빼내서 속 시원히 떠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빠져나오는 양은 처음보다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울컥 거리면서 콸콸 흐르는 것이 쪼르르 흐르다가 마침내 멈춰섰다.

멈추기 전에 빠져나간 그것은 강물을 따라 아래로 흘러갔다. 피가 빠져나갈 때 그 피의 주인공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붉은빛은 그런 공포를 더해 주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직 살아 있는 뇌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무엇인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살펴 보았으나 그가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은 지푸라기 조차 없었다.

죽는 자들은 이제 자신이 더는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 죽는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 아닌가.

이런 편한 마음은 그를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조금 남아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조금만 힘내, 넌 살 수 있어.

그런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설사 들렸다 해도 뇌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힘을 낼 수 없었고 살 용기를 잃었다.

숱한 전투에서 숱한 전우들의 목숨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봤음에도 정작 자신이 그런 상황이 되자 그들은 매우 당황했다.

죽으면 죽는 것이라고 자조했던 그들은 그것이 막상 닥쳐오자 몸을 떨면서 엄마를 불렀다.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부르는 것으로 그들은 이 세상에 온 마지막 순간을 버텨냈다.

그러다가 버티는 것에 한계를 느끼면 엄마를 부를 힘조차 없이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듯이 몸이 땅으로 쳐졌다. 애초 누워 있던 자들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으나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었던 자들은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기댄 자가 몸을 떨다가 아무런 느낌 없이 흐느적거리면 그 때서야 죽음의 혼령이 그를 데려갔다는 것을 알고는 죽었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자들은 애도를 표했다.

죽었다는 한마디는 그가 세상을 떠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피가 한탄강 푸른 물을 붉게 물들이면서 흘러가는 것을 필수는 지켜보았다. 지켜보았다기보다는 그저 보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눈길이 다른 곳이 아닌 그곳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총성이 울렸으나 자신의 전투 지역 밖이었기 때문에 이런 여유가 생겼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적들은 뒤로 물러났다. 필수의 작전은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그는 사단 사령부에 적의 섬멸과 후퇴를 보고했다.

사단장은 잘했다는 칭찬의 말을 했으나 아군의 피해 상황은 묻지 않았다. 현장에서 대기하면서 다음 작전을 기다리라고 했다.

말미에는 돌발 상황이 오면 대대장이 알아서 현장 지휘를 하라는 말을 대기하라는 말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전달했다.

그것은 혹시 모를 실패에 따른 부담을 지우기 위한 것도 있었으나 대대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명령이었다.

당연한 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기억의 상실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자꾸 되새겨서 작은 실수가 큰 화로 변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 때문이었다.

들은 말을 속으로 되 내면서도 필수는 강물에 멈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붉은 피를 싣고 흐르던 물은 돌무더기에 부닥쳐 작은 포말을 일으켰다.

그때는 피가 햇볕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붉은 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다가 얕은 물에서 가시가 박힌 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필수는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흐르는 피에 대해 생각에 잠겼으나 입으로는 적을 완전히 격퇴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도 사단장을 닮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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