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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교육후 그는 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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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교육후 그는 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0.08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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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는 전필수가 됐다. 그는 전쟁통에 이름도 호적도 바꿨다. 어렵지 않았다. 성까지 바꿀 때는 마음이 아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준 것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그 스스로 버렸다. 그때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 세 글자 가운데 하나는 그대로 두었다. 수자 돌림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돌림자의 수자는 빼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자신은 그런 것이 없었으나 그 글자를 볼 때마다 무언가 자신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을 바꾸기보다는 이름만 바꾸기로 했으나 수자를 버릴 수가 없었다. 수는 곧 물일 수도 있었다. 물은 늘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위로는 가지 못하고 언제나 아래로 가는 물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빼어남과 물은 그가 버릴 수 없는 어떤 존재의 힘 같은 것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나서 그가 한 일을 누군나 그렇듯이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죽은 자들이 태반이고 잃어버린 자들이 그 만큼인 아수라장에서 그는 운 좋게도 가족을 건사했다. 마구잡이로 찾기도 하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부산 국제 시장에 목걸이를 걸고 그 위에 이름을 적는 고생 끝에 나온 결과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그런 일을 하다가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가족을 한꺼번에 찾은 것이다.

행상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여선생 하나가 아들, 딸과 함께 저 언덕의 움막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직감은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필수는 뒤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언덕을 향해 달음질쳤고 급기야 빨래를 널던 아내를 만났다. 멀리서 보고도 그는 아내를 한눈에 척 알아봤다.

가족을 찾기 전에는 찾기만 하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했으나 막상 그러고 보니 오래 살고 싶었다. 늙을 때까지 살아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혈육의 정 같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들은 움막을 넓혀 판잣집을 지었다. 비가 오면 물이 지붕을 뚫고 내려왔다. 어떤 때는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폭포 밑에서 피서를 하는 것처럼 그들은 앉아서 비를 맞기도 했다.

받쳐 놓을 대야가 하나밖에 없어 물이 차면 버리고 다시 받쳐 놓는 식이었다. 날이 개면 젖은 옷과 이불을 말렸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한두 끼를 굶어도 참을만했다. 가족이 모인 것이 얼마 만인가.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필수는 억척같이 일했다. 아내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신분은 철저히 세탁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는 동사무소에서 호적 정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전필수.

그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의 자손이 더는 아니었다. 만주와 간도에서 토벌대를 피해 달아나던 독립군도 아니었다. 해방정국의 혼란한 틈에 끼어 반란을 주도했던 특무상사도 아니었고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도 아니었다.

그는 그 전의 그가 아니었다. 아니었으므로 과거에 연연한 필요가 없었다. 그는 서류를 위조해 학교 선생이 됐다. 건물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선 선생의 얼굴은 흐릿했으므로 필수라고 믿을 수 있었다. 조금 길고 갸름한 모양새가 그를 빼닮았다.

우연히 주은 사진 한 장으로 그가 선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순천여고에서 선생질을 하던 아내는 이 사진을 가지고 교육청에 갈 것을 권유했다.

여기까지만 거짓으로 살기로 하자고 설득했다. 남편은 망설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고 선생은 그중 만만했다.

귀동냥으로 들은 것도 있고 역사나 산수에서 중학생을 가르칠 실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선생의 제반 업무에 관한 것은 아내를 통해 얻어들었으므로 피난 교육청에 선생으로 등록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교육청은 그를 전필수 선생으로 인정했고 부산의 피난 중학교 자리를 하나 알선했다. 전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밀고 밀리는 와중에 그들은 더 밀릴 곳이 없는 곳에 다다랐고 필수는 전선을 찾아가 자원했다.

빨갱이가 군복을 입고 다시 전투에 나선 것이다. 전선은 선생의 지위와 훈련 과정에서 보인 전투력을 인정해 간단한 장교 교육을 마치고 그를 국군 소위로 임관시켰다.

전쟁통이 아니었다면 그것도 패전 직전이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필수는 소대장 역할을 거뜬히 하는 것은 물론 전투력도 뛰어났다. 거기에 나이도 많았으므로 곧 중위, 대위 자리를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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