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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06:01 (금)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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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0.07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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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가 어떻게 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는지는 미스터리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천지인데 이까짓 것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지만 간수들은 왜 천수를 끌고 가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인다.

그들은 천수가 있는 문 앞으로 끌고 가려고 지목한 자들을 애초 목적대로 끌고 갔다. 다른 방에 있는 자들도 하나도 예외 없이 그렇게 했다.

끌려가는 자들 가운데 일부는 간수가 들으라고 일부러 천수에게 잘 있으쇼 형씨, 하는 인사까지 했다. 그때 간수의 옆눈과 천수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움찔하는 기운이 천수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순식간에 왔다 사라졌다. 천수는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되레 느긋하게 그 순간을 즐겨 보자고 했다. 그런데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간수는 오지 않았다. 30분 이상 콩 볶는 소리가 났고 이내 조용해 졌는데 간수는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처음 보는 간수가 급히 어디론가 가다가 천수를 보고는 이 양반 왜 혼자 있어? 중얼거리더니 방문을 열고는 끌고 가는 대신 어서 도망가시오, 전쟁이 터졌소. 인민군이 서울을 쓸고 대전 코 앞까지 왔소. 형무소 일부도 폭발로 무너졌소.

이런 말을 따발총 쏘듯이 쉬지 않고 하더니 그 역시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별 일을 다 겪은 호석 아버지였으나 이번 일은 어딘지 잘못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는 유리한 것이었으나 체계라고는 전혀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에서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다. 질서 없는 정부를 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처단해야 하는 무리는 바로 좌익분자들이었다. 이들은 앞이 아닌 뒤에서 공격해올 자들이었으므로 대전형무소 간수들은 이들을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처형했다.

일차로 머리에 구멍을 내는 소리를 들은 잡범 사동의 죄수들은 동요했다. 그들은 비록 남의 물건을 훔치고 때리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들처럼 죄가 무겁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총알은 자신들을 피해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특사로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처럼 부질 없다는 것을 처형대에 매달리고 나서야 알고는 소리 질렀다. 채 소리가 메아리쳐 오기도 전에 그들은 저승의 다리를 건넜다.

천수는 밤과 낮 가릴 것이 뒤뜰에서 들여오는 총소리를 들었다. 간도에서 듣던 소리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자꾸 들어 익숙한 저 소리를 끝으로 그도 고개를 숙이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천수는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러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들은 대장 겪인 천수를 내버려 두었다. 끌고 가지도 않고 총을 쏘지도 않고 살려 두었는데 이는 간수장의 단순 실수이거나 누군가 뒤를 바줬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실수로 치기는 너무 허술했다. 실수할 것이 따로 있지 그것은 실수할래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천수의 목숨을 살렸는

천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높은 담장을 좌우로 두고 언제나 닫혀 있는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밤새워도 하지 못하고 날이 밝아서까지 총질을 해대더니 죽일 자는 다 죽였는지 아니면 안에 있는 죄인들이 모두 사라졌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안에 사람이 없으므로 문을 잠글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문이 열려 있었고 천수는 제 발로 걸어서 복도와 마당을 지나 정문을 거쳐 당당하게 교도소 밖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달리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서두르기보다는 일부러 느긋하게 나오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아직 살아서 팽팽한 눈알을 부지런히 굴렸다. 몸의 다른 기능은 다 소진했어도 눈 만은 제 역할을 100프로 해내고 있었다.

초소에 있던 자들도 망루에서 아래를 보던 보초들도 자기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고 다른 곳 이라는 듯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없으니 감방 주변은 적막이 감돌았다.

그는 그것이 싫다는 듯이 어딘가에 있을 간수나 다른 관계자들이 있는지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걸으면서 그는 도무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도 알 수 없었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사형수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자들이 이 꼴을 보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랐다. 준엄한 표정으로 국가를 들먹였던 그들에게 천수는 대놓고 삿대질을 하고 싶었다.

정위치 해라.

다른 사람은 다 도망가도 너희는 그래야 한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총질을 명령한 자들도 그들일 것이다. 명령을 내리고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남의 목숨이 아닌 바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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