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5 12:14 (목)
121.일리아스(기원전 6세기 이후)- 인간과 다르지 않은 신
상태바
121.일리아스(기원전 6세기 이후)- 인간과 다르지 않은 신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9.16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드시 죽는 필사의 인간에 비해 신은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다. 인간이 능력에 한계를 보인다면 신은 무한대다. 그러니 애초 신과 인간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신이 인간과 동침하면서 반신반인들이 잇따라 태어났다.

부모의 어느 쪽이든 한쪽을 신으로 두고 태어난 인간은 보통 인간과는 다르다. 그런 사람은 영웅으로 자랐고 커서도 그런 행동을 한다. 여기서 행동은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인간 병기를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 않고 산자의 목 베기를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는다. 자주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는 일은 드물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신과 신,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라고 하면 점잖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런 것보다는 호러 물이라고 봐야 한다. 뇌수가 박살 나고 눈알이 뽑히고 어깨가 갈라지며 내장이 쏟아지고 손과 다리가 잘린다.

들고 나는 숨이 멈추어 혼백이 육체를 떠나고 혹시나 그것이 보복할지 두려워 시체는 토막 내고 토막 낸 그것은 짐승의 밥이 되도록 거리에 놔둔다. 그것도 모자라 잘게 자른 것을 수없이 창으로 찌르고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닌다.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옛날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하자. 상상하기 어려운 기원전보다 더오래 전의 일이니 그러려니 하자.

이때도 인간들은 화해하기보다는 싸웠다. 둘만 모이면 서로 잘났다고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다투는 것을 뭐라고 시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해도 너무 했다.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가볍다.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칼을 빼서 달려든다. 무시했다고 말을 타고 가다가 긴 창을 던진다. 모욕을 참으면서 길고 오래가기보다는 욱하는 성질 죽이지 못하고 짧고 굵게 살고자 한다.

승리 후 차지하게 될 재물에 대한 욕심, 명성을 얻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 상대의 기를 죽이고 욕보이기 위한 대결, 너보다 내가 낫다는 이기심이 하늘을 찌른다.

생각이 없는 인간들은 그렇다고 치자. 원래 인간은 그런 부류의 종이다.

그런데 신은 왜 그런가. 인간보다 부족한 것이 없는 신들조차 인간의 싸움에 끼어든다. 단순히 끼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추키고 들쑤신다.

어떤 때는 요정까지 드나드니 아주 개싸움이 따로 없다.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필멸의 인간을 이렇게 학대해도 되느냐고 삿대질 하면서 따지고 싶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그리스 신이란 인간보다 못한 존재들이 많다. 지금의 기준이 아닌 기원전 잣대를 들이대도 신들의 도덕성이나 양심, 재물에 대한 욕심, 상대편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인간은 양반이다.

그러고도 신이냐고 침을 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우스만 해도 그렇다. 다른 신들은 어리고 경험도 적고 혈통도 그러니 하찮은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치자.

▲ 많은 전투 장면 가운데 압권은 주인공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싸움이다. 신들이 서로 갈려 응원하는 가운데 운명의 신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손에 땀이 절로 난다. 한편 여기 나오는 신들은 뇌물과 선물에 약하며 시기와 질투로 절어 있다. 인간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는 신들의 작태를 살펴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 많은 전투 장면 가운데 압권은 주인공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싸움이다. 신들이 서로 갈려 응원하는 가운데 운명의 신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손에 땀이 절로 난다. 한편 여기 나오는 신들은 뇌물과 선물에 약하며 시기와 질투로 절어 있다. 인간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는 신들의 작태를 살펴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하지만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는 그러면 안 된다. 모범을 보여야 하고 존경을 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 힘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인격으로.

그의 부인 헤라는 또 어떤가. 둘은 남매 사이지만 혈육의 정이나 부부의 사랑보다는 때로는 남보다 못한 존재로 서로 못잡아 먹어서 으르렁거린다. 신들의 부모가 이러니 그들의 자식인 다른 신들은 오죽하겠는가.

원래 신을 욕하기 위해서가 아닌데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신들을 추궁하고 비난하고 얕잡아 보려는 의도가 애초 없었는데 어쩌다 샛길로 빠져들었다.

잘 못 들어온 길은 원점에서 시작해야 제대로 갈 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깝다고 고집 피울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헤매면 바른길을 찾을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마찬가지라면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거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볼 수 밖에 없다. 과히 틀린 말이 아니라면.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방대한 장편 서사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할 수 는 없다.

그러니 <일리아스> 가운데 가장 서사가 활발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만 따로 보자.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싸움은 명장면 가운데 으뜸이다.

둘이 영웅인 것은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 만큼 유명한 장수들이니 쉽게 죽거나 쉽게 죽이지 못한다. 둘은 양 진영으로 맞서 싸운다.

여기서 이기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된다. 신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패를 나눠 서로 도와주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헥토르보다는 아킬레우스 쪽으로 기운다.

그렇게 정해져 있어 아무리 헥토리가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 그가 아끼던 자가 쓰러져 죽으면서 자신의 내장을 손으로 끌어안는 모습이 그의 결심을 더욱 굳혔다 해도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결투를 피했어야 했다.

그러나 헥토르는 아킬레우스가 가까이 와서 죽음의 종말에 이르도록 하라는 준엄한 경고의 말을 무시하고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한다.

어린아이처럼 말로 겁주지 말고 조롱이나 폭언이라면 나도 너만큼 하니 삼가라면서 먼저 선방을 날린다. 그러나 아킬레우스 편에 섰던 아테나가 가볍게 창을 피하게 한다.

이번에는 아킬레우스가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헥토르 편인 아폴론이 안개로 감싸 위험을 피한다. ( 굳이 편을 가르자면 아킬레우스 쪽은 헤라를 중심으로 포세이돈, 아테나가 헥토르는 제우스, 아폴론, 아프로디테로 갈린다. 영웅들의 싸움에 신이 대신 나선 것이다. )

운명은 아킬레우스의 손을 들어 준다. 헥토르는 헤파이토스가 아킬레우스를 위해 만들어준 대단한 무구에 연약한 살가죽이 뚫리며 죽는다. 죽어가는 헥토르는 마지막 숨을 쉬며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한다.

내 시체를 개들이 뜯어 먹게 내버려 두지 말라, 내 부모님께 청동과 황금을 넉넉히 뇌물로 받는 대신 트로이인들에게 시체를 보내 그들이 나를 화장하게 해달라고. (헥토르는 싸우기 전에 둘 중의 하나가 죽으면 욕보이지 말고 시체를 돌려주자고 약속할 것을 요구하나 아킬레우스는 거절한다. 헥토르는 이미 죽음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제우스와 그의 아들 아폴론이 전에는 도와줬으나 지금은 그러지 않음을 한탄한 대목에서 그렇다.)

아킬레우스는 거절한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이 걸작이다.

부모를 들먹이며 애원하지 말라, 네 살을 저며 먹고 싶다. 아무리 많은 몸값과 거기에 더 많은 약속이 더해져도 네 어머니는 몸소 낳은 자식을 침상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혼백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무자비하게 난자한다. 철저하게 짓밟는다. 하지만 이 말은 뒤집힌다. 제우스가 나서서 중재했기 때문이다.

헥토르 부모로부터 두둑한 몸값을 받은 아킬레우스는 시체를 트로이아인들에게 돌려준다. (그러기 전에 헥토르는 두 발의 아킬레스건이 잘리고 전차에 머리가 뒤로 매달린 채 끌려다니는 수모를 당한다. 그러나 신은 시체가 훼손되지 않고 썩지도 않은 온전한 몸으로 부모에게 돌려준다. 그럴 거면 왜 죽였니?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인간은 필멸하므로 불사의 신이라고 해도 운명을 거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시체를 넘겨 주기 전에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애도의 의미로 전차 경기를 하는 등 승자의 기쁨을 만끽한다.

: 헥토르가 죽고 나서 아킬레우스는 아카이오이족을 모아 놓고 물 흐르듯 유창한 연설로 이렇게 말한다.

이 자가 죽었으니 성채를 버릴 것인지 아니면 헥토르가 없어도 계속해서 버티기를 열망하는지 트로이아인들의 의도를 알아보자고 제의한다.

헥토르의 시체를 트로이아인들에게 넘겨준 후에는 12일 동안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시간을 번 트로이아인들은 구일 동안 나무를 모으고 10일 새벽에 헥토르를 밖으로 들어내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다. 장례식은 엄숙하면서도 떠들썩했다.

그 사이 신들은 헥토르의 시신과 아킬레우스를 둘러싸고 시비를 벌였다. 그만큼 두 사람은 <일리아스>의 핵심 주인공이 되겠다.

9년 동안 일어난 일을 영화로 보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 많은 신들이 서로 양편으로 나눠서 벌이는 시기와 질투, 음모와 배신, 협잡, 매수, 간계, 원한, 복수, 체념, 절망, 영광, 죽음, 잔인, 무용, 약속, 배신, 혈통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편 여기 나오는 신들은 결코 인간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이나 윤리적 전범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뇌물이나 밝히고 선물이나 들어오기를 바라는 허접한 내면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신들이 부소 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인간 세상이 평화로울리 없다.

<오디세우스>와 함께 그리스 정신의 시초라든가 서양문명의 기원이라든가 하는 상찬은 여기저기 넘쳐 있다. 몇 권으로 되고 각 장 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호메로스가 실제 인물인지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대한 논란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런 말 대신 이번 호 팁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중복되는 글귀들을 나열해 보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흥미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표현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고 후세들이 느끼기에 어떤 충격으로 다가오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하도 자주 나와 책을 덮고 나면 입에 달고 다닐 정도다.

“훌륭한 정강이 받이를 댄,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나무랄 데 없는, 사지를 풀어 버렸다, 쿵 하고 쓰러졌을 때 무구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버티고 서서, 목숨을 빼앗기를 열망하며, 두 눈은 어둠이 내리덮었다, 신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배가 불룩한 방패,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 자여, 그보다 나은 말도 생각해 낼 수 있으련만, 먼지 속에 쓰러지면서 손바닥으로 땅을 움켜쥐었다, 가슴에 발을 얹고 무구를 벗기다, 길게 뻗었다, 사람의 살을 먹기 위해 열망하며 땅에 가 꽂혔다, 마주 달려 거리가 서로 가까워지자, 실 컫 울어 마음이 좀 가벼워지거든, 하데스의 집으로 데려갔다, 통 발굽의 말들, 무릎을 잡고 자비를 빌자," 등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