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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9-30 11:40 (수)
120. 습작실에서(1941)- 21살 고독남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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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습작실에서(1941)- 21살 고독남의 기쁨과 슬픔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9.05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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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고독은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다가오면 피해야 하고 굳이 자기 것으로 삼아서는 안될 나쁜 물건처럼 보인다.

쓸쓸하고 혼자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외롭다는 말과 같이 다니면 어울린다.

그러나 고독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고독이다. 이것은 대리경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행 프로를 보면서 가보지 못한 곳을 만족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도 같지 않다.

남들과 어울려만 안정되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사람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고독 예찬은 말로 하자면 끝도 한도 없다.

▲ 주인공 남 상은 식민지 조선에서 동경으로 유학왔다. 21살인데 고독을 벌써 알아버렸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인으로 태어난 숙명 때문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작가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학인데도 그는 부모님이 있는 조선으로 가지 않고 온천을 하고 스키를 즐긴다. 그에게 고독은 존재의 이유이다.
▲ 주인공 남 상은 식민지 조선에서 동경으로 유학왔다. 21살인데 고독을 벌써 알아버렸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인으로 태어난 숙명 때문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작가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학인데도 그는 부모님이 있는 조선으로 가지 않고 온천을 하고 스키를 즐긴다. 그에게 고독은 존재의 이유이다.

그만큼 인간에게 홀로 있다는 것, 세상과 떨어져 나 만의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선물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인간 문제에 천착했던 톨스토이도 죽기 전에는 고독속에서 죽어야 한다고 노래했고 실제로 아내와 수많은 자식을 떠나 차가운 겨울 어느 날 홀로 거리의 한적한 기차역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고독 속에서 죽을 때 톨스토이는 진정 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자유와 행복을 느꼈으리라. 뜬금없이 왠 고독이냐고 물을 독자들을 위해 허준의 <습작실에서> 주인공 남 상이 고독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남 상과 고독은 여름날 비옷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다.

그런데 고독은 언뜻 나이든 사람과 어울려 보인다.

톨스토이가 고독 속에서 죽을 때 그의 나이는 82세였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인생의 쓴 맛을 조금 본 사 십대는 되어야 고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 둔다.

고독이 친구로 찾아올 때는 대개 늦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 상은 이제 겨우 21살이다. 아무리 애 어른이라고 해도 그것과 친하게 지낼 나이는 아니다.

어쨌든 남 상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 유학생이다. ( 이런 배경이 쉽게 고독을 가까인 둔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학교가 있는 동경에서 먼 곳에 셋 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셋 집에는 주인 늙은이 한 명 만이 살고 있다. 두 아들이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해 남 상이 말하자면 아들 겸 말 벗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남 상은 대학생이지만 학업이나 진로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식민지 조국의 형편이나 독립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다.

세 걱정을 하면서도 돈에 쪼들린다는 인상은 없다. 달라고만 하면 화수분처럼 조선에 있는 잘 사는 부모에게서 돈이 뭉텅이로 배달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나이 학생이면 당연히 가져봄직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는 대목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 걱정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데 실제로는 없어서라기보다는 있어야 할 그것 보다는 홀로 있는 고독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독한 것은 그 것만으로 옳은 일이고 또 옳게 사는 사람은 고독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앞서 간 것일까. 그런 짐작만으로도 고독의 값어치는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조금 지루 하더라도 책 서두를 옮겨 보자.

“ 정말 홀로 혼자 되는 것이 좋아서 그랬던 거지, 그렇지 아니하면 나 혼자라고 하는 의식 속에 놓여 있기를 원함이어서 그랬던지, 어쨌든 고독이라고 하는 것이 그처럼 사치한 물건인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와 같은 청춘에 있어서는 여간 은근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방학을 이용해 고향 조선을 다녀오기 보다는 친구와 온천을 가고 스키장에 가서 하는 이런 말들 예를 들어 보자.

"눈발이 희끈거리는 축축히 젖은 산장의 어둠을 내어다보는 우수에다 비기면 그것은 또 얼마나 단순한 즐거움이었는지도 몰랐다. 온 지 한 주여가 되어 시험이 끝난 예과 동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산장은 밤으로 들썩이게 되었다. 나는 밤이 가지던 나의 조용하고 은근한 즐거움이 다 덜리지 않을까 혼자 근심하기도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주인공 남 상은 여럿보다는 혼자가 더 어울리는 타입이다.

노인은 벌써 남 상의 이런 스타일을 알 고 있다. 그래서 겉은 수수하면서 이렇게 알찬 사치를 하고 있다고 핀잔아닌 핀잔을 한다.

그렇다. 고독은 누구나 할 수 없으나 일단 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값싼 것처럼 보인다. 돈 들이지 않는 사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독이다.

노인도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 아니 남 상이 노인과 비슷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노인집의 현판에는 욕됨을 참는다는 '인욕'이나 불교의 '무무명 역무무명진' 이라고 쓴 글씨가 붙어있다.

이 노인 역시 보통 내기가 아니다. 고독이라는 알찬 사치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 남 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보다 노인과 더 어울린다.

병든 노인이 죽는다. 노인은 죽기 전에 남긴 유서에서 이런 말을 쓰고 있다.

"최후의 한 시간을 저 죽자는 염원대로 죽게 하는 것, 용납.”

이런 노인과 죽기 전에 통음을 하지 못한 것을 남 상은 아위숴 한다. 노인은 남 상을 집에 잡아 놓고 한 잔 하자고 간청할 정도로 말했었다.

남 상의 아쉬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가 아파 했을 때 방학을 이용해 조선땅에 가서 한약을 지어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남 상은 뒤늦게 후회한다. 이것은 인생이 허무한 것과는 다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이거나 무엇도 가치가 없는 무의미에 빠지거나 형상이 없어 볼 수도 없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 편지글 형식이다. 식민지 시대 소설치고는 다른 소설과는 격을 달리한다.

지식인의 무력감도 없고 가난한 자의 비관이나 지주의 수탈도 등장하지 않는다. 복수나 방화나 살인의 기색도 없다. 오로지 고독이나 외로움이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주제와 마주쳤을 때 느끼는 신선함이 제법 있다. 문장도 예사롭지 않았다.

굳이 찾아서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하는 이유다. 소설에는 독립이나 저항이나 기타 그런 것을 연상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으나 작가는 이 소설을 발표하고 만주로 떠났다.

새로운 소재를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서 였다. 그 후 독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월북했기 때문이다. <탁류>와 <잔등>이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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