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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10:12 (금)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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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9.01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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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고 살아가야 할 날이 많았으므로 호석은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도 어제처럼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기로 작정했다.

이런 삶마저도 감지덕지했다. 고마운 마음은 그저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살게 해 주는데 있었다. 그런 나라에 사는 것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천인 공로할 대역죄인의 아들은 그것이 때로는 감지덕지했다.

세상에 드러나기보다는 숨어서라도 살 수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불평불만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다만 죄가 있어 그가 받아야 한다면 독립군 아버지를 둔 것밖에 없었다. 섬사람들을 토벌하러 가지 않은데 있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명령 불복종은 반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틀리지 않고 대체로 맞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죄는 작지 않고 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도 받고 있다. 받고 있다고 한 것은 아직 아버지의 무기징역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은 낙인처럼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험한 기억도 한 세대가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법이다.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호석은 조금씩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순간 순간 낙인은 뻘 속의 낙치처럼 살아서 꿈틀거렸으나 그것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족보 없는 인생이 나았지만 원해서 독립군의 자식은 된 것은 아니었다. 빨치산의 자식도 그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호석이 사생아나 고아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리에 걸린 족쇄를 풀 수만 있다면 출생의 비밀 정도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므로 연좌제에 걸려 들었고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호석이 설 자리는 없었다.

잘 있거나, 교실아.

지상의 좋았던 짧은 시간을 마무리하고 그는 햇빛 없는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의자 빼기는 더는 할 수 없었고 그것은 학교에서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억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도 유일한 자산이라고 호석은 주유소 한쪽에서 웃었다. 교련 선생이 부른다는 말을 듣고 호석은 가방을 챙겼다. 왜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네 아버지가 맞지?

아마도 그가 교련 선생 앞에 불려 갔다면 선생은 사진과 사진 아래에 있는 이름을 손가락질 하면서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길로 그는 담임도 친구도 그 누구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교문을 나왔다. 책 가방을 조용히 쌌다. 그러면서 좀 떨었던 것 같다. 볼펜 몇자루와 커터날이 들어 있는 필통은 남겨 두었다. 누구든 써도 좋았다. 이제 그에게 적을 수 있는 연필은 필요없는 물건이었다.

그날 따라 교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수위도 그 누구도 그가 종례도 끝나지 않은 대낮에 학교 문을 나서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스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작은 공포심이라고 해야 할까.

호석은 몸을 옆으로 돌려 교문을 나서면서 이런 기분이 들었다. 굿바이.

그가 생각해낸 영어 단어였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을 다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친 들판에서 제 호구 하나는 건사할 수 있는 최소한 기본기는 갖추었으니.

가장 운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운 나쁜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고 호석은 웃고 또 웃었다. 정신은 맑아졌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다. 하늘에는 구름들이 사이좋게 떠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갔다. 마치 자신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였다. 호석은 그것을 보면서 지금처럼 쭉 운 좋은 놈으로 오래도록 살고 싶었다.

걱정을 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러지 않았던가. 만주에서 간도에서 아버지는 목숨이 열 개도 넘는다는 듯이 총알을 피했고 해방조선에 들어왔고 고향 여수에서 꿈같은 여러 달을 보내기도 했다.

군에 들어갔고 상사가 됐고 부하들을 소집해 반란을 일으켰다. 세를 몰았으나 금방 사그러들었고 살기 위해 지리산으로 숨어 들었다.

그러기 전에 어머니는 잠깐 행복했고 그 행복은 호석의 출산과 함께 절정을 맞았다. 어머니는 늘 너는 누구의 아들도 아닌 바로 내 아들이라면서 아버지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그래서 너를 보물로 주셨다고 말했다.

어디를 가든 늘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호석은 자신이 방금전에 나온 교문을 바라봤으나 그곳에 어머니는 없었다.

당연했으므로 혹 잘 못 본 것은 아닌지 눈을 비비지도 않았고 잠시 자리를 비웠으므로 곧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아니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그렇게 해도 거기 어머니는 없을 것이기에.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대하는 군인과 같은 심정은 아니었으나 꾸중을 들을만큼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탕아도 아니지 않는가.

부끄러움도 없고 잘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아버지도 자신의 행방불명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이고 세상 누구도 어느 날 사라진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신보다 한 살 위 누나가 마음에 걸렸다.

맘모스 백화점에서 일하는 누나는 그의 존재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하는 곳을 아는 이상 누나는 간혹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학교를 나온 둘러댈 이유는 많을 것이다. 걱정할 것을 염려해 계속 학생인체로 행세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한꺼번에 닥쳐왔던 문제는 이처럼 가치를 치면서 좁혀가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변했다.

세상에 홀로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여럿이 아닌 것에 대한 고독보다는 자유라는 느낌, 이제부터는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 가겠다고 그런 다짐을 하자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하늘로 붕 떠가는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는 천천히 시조사 앞을 나와 청량리 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구리쪽 푯말을 보고 몸을 반대로 돌려 무작정 그리로 걸었다. 길에는 언제나 걷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간혹 가다 개들이 지나갔고 미친 사람이 머리를 기르고 의자도 없이 맨바닥에 앉아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들은 개처럼 사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손을 내밀었는데 그래도 정신이 조금 있는 사람은 한 푼 줍쇼 하는 소리까지 내질렀다.

언제나 목적지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것이 없다. 천천히 호석은 걸었다. 저기 앉은 남자가 나를 알아보는 것일까.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돈이 들어올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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