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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5-16 12:55 (월)
사석에서 그들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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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에서 그들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24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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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온 흰옷 입은 사람들은 당황했다. 당당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권한을 행세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되지 않는 것을 되게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힘에 부쳤다.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곳의 문이 열리기를 신에게 부탁했다. 여북하면 그런 것까지 하느냐고 지금이 고사 지낼 때냐고 힐난하는 사람에게 조차 자신들처럼 두 손을 모아 빌며 힘을 보태 달라고 간청했다.

일부는커녕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점령군에게 그들은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석도 할 수 없었다.

독립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됐다고 해도 돌아가는 형편은 해도 너무 했다. 이제서야 사람들은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고도 무한정 기뻐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임정의 정규 독립군이 반도에서 전쟁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통한으로 남았다.

겨우내 혹독한 훈련을 하고 상해에서 출발 명령만 기다리던 독립군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들은 살았다거나 해방됐거나 하는 안도감이나 통쾌함에 앞서 이건 뭐지?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악몽에 화가 나서 뒤돌아보고 허공만 노려보았다.

실미도 북파 부대원의 심정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훈련 중에 동료 7명이 혹독한 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만큼 오로지 김일성을 때려잡고 주석궁을 폭하하려던 그들의 목표가 좌절됐을 때 그들이 분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불 속에서 튀쳐 나온 그들은 20년 전의 독립군특공대와 자신들이 억울함을 비교하지 않았을까.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 잔뜩 무너져 내일 때 그들은 마음만 아니라 몸도 그렇게 됐다.

1차 300명과 2차 1300명 그리고 3차 3300명의 정규군이 투입돼 서울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일제와 제대로 한 판 붙는 와중에서 해방이 됐다면 그들은 점령군의 당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혁혁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더라도 아니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진주한 상태였기만 했어도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무언가 준비한 것이 준비된 목적에 쓰이지 않고 쑥 빠져나갈 때 몸의 반쪽이 사라지는 느낌을 임정의 핵심인사는 받았다. 그는 미군이나 소련에 대해 그리고 중국에서 조국의 입지가 크지 않고 매우 왜소하게 전락 될 것을 걱정했다.

애초 크지 않아 떨어질 절벽도 깊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그로 인해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염려한 때문이 아니라 조선 민중이 해방 정국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주권행사가 더딘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이런 예상은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불길한 것의 예측은 이 경우에도 피해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조국에서 무언가 할 일을 부지런히 찾아 움직였다. 정세를 파악하고 돌아가는 왜인들에게 발길질이라고 한 번 더 내지르기 위해 매일 아침 태권도 정권 찌르기로 체력을 단련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어찌됐든 된 것은 된 것이니 된 것에 미련을 갖기 보다는 된 이후의 정국에서 그들은 한반도의 운명이 바른 길로 가는데 말의 고삐를 잡으려고 애썼다.

비록 잔등에 올라 여봐라 호통 치지는 못할망정 올라탄 자가 엉뚱한 길이 아닌 제대로 된 원래 목적지로 갈 수 있도록 말의 쥔 손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그런 어느날 그들 앞에 협조하시오 하는 날벼락 같은 전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면 살려는 줄 것이오.

문장은 젊잖았으나 그 뜻은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없는 듯이 숨어 지내거나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고삐 쥘 사람은 많은데 하필 그것을 잡고 귀찮게 구느냐고 글귀를 적은 자들은 나무라다 안되니 협박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뒤끝 작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들만 말타고 고삐쥐고 제멋대로 해도 될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라고 흰 옷 입은 백성들이 권한을 다 준도 아니다. 되레 그런 것이 있다면 고삐 쥔 자들이 적고 자시고 할리 없었다.

부족한 그들은 그래서 문자질을 새벽부터 시작했다. 부대를 동원해 댓글을 달고 작은 허물이라도 찾아내 침소봉대했다.

그 가운데는 독립군이 10분 휴식 50분 훈련을 어기고 13분 휴식으로 3분간이나 훈련을 게을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비록 그것이 딱 한 번뿐이라 해도 한시가 급한데 꾸물거리면서 독립자금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독립군 가운데 한 명이 훈련 중에 넘어져 무릎이 까였고 그래서 소대장이 반창고와 안티푸라민이 올 동안 비록 뙤약볕 아래지만 3분간 특별 휴식을 줬다.

억울했지만 독립군은 빌미를 준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변병 대신 사과했고 그것을 기회로 전보를 보낸 그들은 상해에 있던 자들의 파렴치함이 극에 달했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그들은 검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독립군이 자금을 횡령했다고 가두방송에 나섰고 시민들이 설마 하고 의혹을 제기하자 그다음날에는 그들의 대장이 13만 냥을 거저먹었다고 숫자까지 제시했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은 금액이 나오자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여세를 몰아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자들이라고 몰아치지기 시작했다. 붉은 물이 들었을지 모르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런자를 보면 지체 없이 신고하라고까지 요구했다.

수세에 몰리는 자들은 차를 구해 자신들도 맞불을 놓고 싶었으나 차 값은 비싸고 그것을 살 돈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환영받았고 그래서 인파에 손을 흔들던 엊그제 일은 먼 과거가 됐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짧았다.

차라리 내 허리를 끊어라 하고 배를 들이밀었던 사람은 국군 장교 계급장을 달고 권총을 든 사람에 의해 세 발의 총을 맞고 운명했다.

그는 죽을 때 상해서 일본 앞잡이에게 죽었으면 이 정도는 슬프지 않았을 거라며 한탄했다. 독립된 나라에서 일본인이 아닌 같은 조선인에게 죽는 것이 몹시 서러워 그는 죽을 때 눈조차 감지 않았다.

내 죽음을 왜놈에게 알리지 말라고 외쳤던 이순신 장군의 그 처절한 애국심이 그에게 전해졌다. 눈을 뜨고라도 그는 어수선한 정국의 수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갈라진 국토를 하나로 꿰매 놓고 싶어서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실이 달린 바늘로 허리를 깁는 시늉을 했다.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257 킬로 미터를 두 번 왕복하면서 깔끔하게 박음질한 그는 그제서야 마지막 숨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와 왔다. 그는 죽기 위해 눈을 감는 대신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남은 한 손으로 동지들을 손꼽아 보았다.

어머니도 자식도 아닌 동지를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그들이 자신이 못다 한 일을 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숨을 놓으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신처럼 70년 만에 부활해서 지금 세상을 돌아보면 그의 꿈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떤 평가와 분석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흰옷은 붉은 색으로 변했고 그는 그 옷을 후세에 남겼다.

반면 환영을 받지 못했던 토벌대는 그들이 한 행적을 알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다시 세상이 바뀌는 것을 알고는 독립군은 빨갱이라며 다시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기막힌 일이었으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떨던 죄지은 자들이 큰소리치면서 세상을 향해 눈에 보이는 자들 앞에서 완장을 휘둘렀다.

민족 지도자가 손수 준 완장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들의 왼쪽 어깨 부분에 직접 매주면서 동지들의 역할이 중요하오, 하고 한마디 했다. 눈치 빠른 그들은 완장을 내려다보면서 맡겨만 주십시오 하고 다 알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만 되면 어렵지 않고 쉽게 일 처리 하겠다고 맹세했다.

골치 아픈 일로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팠던 민족 지도자는 알아서 한다는 그들의 말에 고무돼 완장 옆에 계급장 하나를 더 붙여 주었다. 그리고 알아서 한다는 일을 처리하면 계급장의 반대편에 훈장을 주렁부렁 매달아 주었다.

완장과 계급장과 훈장은 살인 허가증이었다. 죽여도 된다는 뜻이었다. 마땅히 그래야 할 자들을 그렇게 하는 것은 죄라기보다는 상에 가까웠다.

우선 단체를 만들고 특위를 구성해 친일분자를 처단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순위 처단 대상이었다. 그들은 사람이나 이름이 아니라 그냥 빨갱이였다.

마침 제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민족 지도자는 토벌대를 먼저 떠올렸다. 이런 때를 대비해 먹이를 주고 기름 칠을 해온 것 아닌가.

꼭두각시는 폭도를 제압할 특수부대를 토벌대 위주로 꾸릴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어떠한 폭력도 정부는 용서하지 않고 엄벌에 처한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것은 코 높은 자들에게서 배운 수법이었다. 엄벌이라는 말에 흰 옷 입은 백성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폭력에 진절머리가 난 터라 그런 자들의 죄를 묻고 죄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하자 위대한 지도자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제주는 멀었다. 그래서 그곳과 가까운 여수에 있는 14연대를 급히 소집했다.

호석 아버지는 그때 여수에 있었다. 전보를 치고 마중 나온 아내를 만난 지 한 달 후였다. 아내는 순천여고를 나와 그 지역에서 선생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보다 아이들이 다칠가봐 걱정했다.

서울을 떠난 호석 아버지는 몇 달을 놀다가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배치받은 곳이 여수였다. 그는 연대의 특무상사였다. 독립군의 신분을 숨기고 자원했는데 얼마 후 전투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그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군인 체질이었다.

만주에서 호령했던 목소리는 고향 여수에서 더 잘 어울렸다. 그는 공산군과 맞설 강력한 군대를 원했다. 부하들을 모질게 다뤘는데 그것은 훈련대장의 성과였으며 연대를 무적함대로 만드는 요인이었다.

힘들면서도 그들은 호석 아버지를 형처럼 따랐다. 규율은 엄했으나 공정하게 대했으며 혼자 차지하기보다는 병사들과 나누는 인정에 그들은 다른 상사와 다른 면모를 보았다. 모두 만주에서 간도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이었다. 그래서 사석에서 그들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한 통의 전보 앞에서 호석 아버지는 잔뜩 긴장했다. 무서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공산군도 아니고 제나라 백성을 토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을 괴롭혔다.

제주에 가면 필경 총질을 피할 수 없고 그러면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다. 과연 제 민족에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는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특임 중사에게 부대원들이 집합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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