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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아버지는 순천으로 가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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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아버지는 순천으로 가는 편지를 썼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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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아버지는 종로 거리를 걸었다.

신날 것이라곤 없었다. 망국의 설움을 벗은 지 불과 얼마 만에 다시 예전과 비슷한 신세가 됐다. 오늘도 어제도 잊지 않고 오롯이 독립에만 정진했는데 결과는 이처럼 무참했다.

만주에서 상해에서 간도에서 망국노라고 놀려대도 대꾸할 말이 없어 슬펐던 기억이 조선 땅에서 되풀이됐다. 어찌해서 해방이 됐어도 바뀐 것이 없는지 그것이 의아한 호석 아버지는 유행가 가사처럼 그저 정처 없이 발이 가는 데로 걸었다.

밥 굶고 배고파 울었던 독립군 시절이 차라리 그리웠다.

그때는 무언가 한다는 자부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배고프고 놀림받고 아파도 눈물로 참는 힘의 원천이었다. 거기에 길들여져 있어도 노예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위험한 일을 해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몰아치는 감정의 해일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잠시 가로등 기둥에 기대섰다.

패자의 슬픔은 패자가 져야 한다. 굳이 승자는 아니어도 지배자가 패배해서 돌아갔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와야 한다. 그들에 찬성한 자가 아니라 반대하고 저항했던 자들이 그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고 미래라는 것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조선 땅 어디에도 그런 징후는 없었고 호석 아버지는 그것이 뼈져렸다. 토벌대가 똘똘 뭉쳐 단상을 꿰차고 있을 때 독립군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독립군은 독립군 시절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꼭두각시가 외치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우연히라도 좋으니 그들 누구라도 만나면 이게 무슨일인가요 하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거세진 우익의 득세가 가져올 한반도의 운명이 애처로워 목놓아 울었다. 신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뾰족한 수가 있다면 말해 달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했다. 독립군은 병원에서 죽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 그리고 앵무새처럼 외쳤던 독립만세는 다 어디로 갔는가.

몹시 설레었던 그 날 하루가 신석기시대처럼 먼 과거가 됐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앉지도 서지도 못해 손기정 선수처럼 두 시간 내내 달려 다녔던 그 화사한 하루는 하룻 만에 끝났다.

일제 치하에서도 행복은 있었으나 이제 그들이 물러난 지금 그것은 사방 어디에도 없었다. 없는 그것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호석 아버지는 종로 삼가에 이르러서야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했다.

신도림에서 아침을 먹고 쉬엄쉬엄 온 것이 벌써 여기였다. 허기졌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은 딱 하루였다. 시장기가 밀려들 즈음 길거리의 여자들이 부르는 달짝지근한 음성이 귀에 척 걸렸다.

놀다가 오빠.

여자들은 그가 훌륭한 남자라도 되는 듯이 부드럽고 애교 넘치게 응대했다. 그런 모자를 좋아해서 쓴 것은 아니지만 그는 챙이 넓은 그것을 한 번 손으로 눌러 바로 잡았다.

제복 대신 사복이 더 잘 어울리는지 아래를 한 번 쓱 훑어보기까지 했다. 그것은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 것은 그녀들을 의식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고 나자 헛웃음이 나왔다. 마치 올 것을 예상하고 자신을 맞으러 나온 부인 같은 그녀들의 태도에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말을 한 여자가 자기 앞으로 오면서 한 번 더 지껄였다.

오빠, 나야 연순이.

여자란 묘한 존재였다. 호석 아버지는 그녀가 순천의 아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비슷함이 얼굴에서 목소리에서 몸매에서 드러났다. 그 가운데서 살짝 위로 치켜뜬 눈매가 더욱 그랬다.

이번에는 여자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잡으려는 시늉이 아니라 정말로 팔목을 잡았다. 거칠게 뿌리치기보다는 얌전하게 약속이 있소. 조건이 까다로워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이 호석 아버지는 단호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말로 응수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무안당해도 좋을 여자는 아니었다. 호의를 굳이 적의로 돌려줄 이유가 없었다. 가벼운 여자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호석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연순이를 찾아요. 곽연순.

내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조심스럽게 그녀가 말했다. 여자가 순순히 포기한 것은 이번에는 양해해 주니 다음에는 준비하고 오라는 다짐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리 대금업자처럼 악착같이 달려들기보다는 가던 길을 가도록 잡았던 팔을 그녀는 살며시 놓으면서 짧은 미소를 지었다. 아쉬운 듯, 그러나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손까지 흔들었다.

그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뛰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바라지도 않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김구를 비방하고 야유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좌우 대립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기가 막혔다.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났다.

일본인을 상대하던 그녀들은 이제 미국인도 가리지 않았다.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미군이 들어앉자 헬로우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려고 독립운동했던가. 목숨이 여럿인 양 토벌대를 피하지 않고 일본군과 싸웠던 자신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런 자괴감이 들자 그는 부끄러운 행동을 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안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자기가 창조한 것을 저주하는 신처럼 살아 돌아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땅 위에 서 있기 어려운 존재가 되자 지옥 가운데서도 맨 아래쪽으로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고 호석 아버지는 생각했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에 힘이 빠져나갔다.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호석 아버지는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동대문으로 향했다.

미쳤나 봐.

연순이 안으로 들어가자 나와 있던 여자들이 지껄였다.

손님으로 알고 소리친 자신들의 무안을 이런 식으로 여자들은 달래면서 코가 크고 노린내를 풍기는 양키들이 다가 오고 있는지 눈알을 굴렸다.

총독 대신 들어앉은 꼭두각시는 국민 여러분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생전 국민 여러분을 들어보지 못한 국민 여러분은 그 말에 감격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모두를 놀라게 하려고 국민 여러분을 외쳤을 뿐이다. 국민 여러분 외에는 그에게서 배워둘 만한 것이 없었다.

대신 꼭두각시는 흰옷을 입고 흰옷 입은 백성들을 겁박했다. 그 때가 차라리 나았다. 빠가야로를 듣던 그 시절이 호시절이었다고 호석 아버지는 한탄했다.

이제 독립군은 토벌대의 장식용으로 의전의 하단에서 상단에 있는 그들을 위해 박수를 쳐댔다. 독립군 사용법을 안 꼭두각시는 그들은 내치는 대신 이제는 정권 홍보용으로 애완견처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더러는 살기 위해서 더러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서 나머지는 토벌대가 내거는 정신에 매료돼 꼬리를 흔들었다. 독립은 나쁜 것이고 토벌은 좋은 것이라는 등식을 독립군이 받아들이도록 그들은 교묘한 장치를 계속 설치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으나 그것을 발설하는 것이 꼭두각시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마음 속으만 이상하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흰옷 입은 그들이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천하는 얻지 못해도 적어도 되찾은 나라에서 주인만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호석 아버지는 순천의 아내에게 일주일 후에 도착한다고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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