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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실락원 >(1667)- 타락 천사 사탄의 인간적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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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실락원 >(1667)- 타락 천사 사탄의 인간적 고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17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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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삼국지 영웅 가운데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조조다 . 마음대로 주술을 부리는 제갈공명이라는 사람도 있고 새 칼 대신 헌 칼 잘 쓰는 조자룡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 조조를 꼽은 것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

의리를 지키고 의리를 저버리고 자신을 올리고 자신을 낮추고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외치고 강하고 약하면서 빠르고 느리고 울면서 웃는 조조야말로 인간 본성 그대로를 갖고 있다 .

간웅이며 충신이다 . 왕이며 신하다 .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 어떤 것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고 그 인간의 모습을 전부 보여준 것이 조조다 . 서두가 길었다 . 사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

존 밀턴은 <실낙원 >에서 사탄의 고뇌를 사람 냄새 풍기면서 그렸다 . 천사이면서 따뜻한 인간의 감정이 있는가 하면 짐승처럼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다 . 상대방의 심기를 살피면서 봐주는가 하면 가차 없이 달려들기도 한다 . 천사의 1/3 이 그를 따랐다 .

밀턴의 버전에서 사탄은 악마의 화신이면서 아니다 . 반면 신은 아주 재미없는 존재다 . 완결 무결하니 그에게서 기대할 것 없다 . 미카엘이나 라파엘 같은 신의 천사들이 그런 인물이다 . 곧게만 자란 바른 소나무다 .

이브는 좀 낫다 . 뱀으로 변한 사탄의 꼬임에 빠져든다 . 순진하기보다는 호기심이다 . 어린 아이를 닮은 그런 마음은 그렇게 좋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맛이나 볼까 하면서 덥석 선악과를 받아들게 만든다 .

먹어보니 괜찮다 . 안 먹어 봤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 . (먹어도 후회 안 먹어도 후회라면 먹는게 낫다.)

아담은 어떤가 .

자신의 갈비뼈로 만들었다고 뽐내나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이브의 말을 아니 따를수 없다 .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브의 말을 거역해 그녀가 떠나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다.

지금이라면 세상의 절반이 여자니 갈테면 가라고 소리 칠 수 있으나 딱 두 명의 인류 가운데 여자는 딱 한 명이다 .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사랑이 용솟음치고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앞서서 그래야 마땅하다.

이브가 건넨다 . 눈치 빠른 아담은 안다 . 그것이 먹어서는 안 되는 먹지 말라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 하늘에서 신이 말하지 않았던가 . 그런데 아담은 거역한다 . 신보다는 이브다. 사랑의 끝장보다는 사랑의 연속을 아담은 원한다.

아담은 생각했을지 모른다.

찰라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끝장나면 어디서 밥을 얻어 먹고 어디서 자고 무엇을 하며 살지, 그런 생각에 아담은 막막했을 수 있다 . 그런 고민 필요 없다 . 사랑의 힘으로 사과를 덥석 깨문다 . 이 내용 모르는 사람 없다 .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 그러니 아는 체 설명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 .

원래 <실낙원 >은 전 10권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 그런데 보충할 것이 있었는지 아니면 더 추가해야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는지 2 권이 보태져 우리가 읽는 것은 전 12 권짜리다 . 권이라고 하니 단행본 정도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권당 중단편 정도여서 다 묶어도 한 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 1 권에서 벌써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와 아담의 타락과 그로 인해 낙원의 추방이 나온다 .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 서두에 등장한다 .

이때쯤 사탄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추방한 신에 저항해 싸울 것인지 그들의 궁전인 복마전에 모여 회의를 연다 .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는 각 권 서두에 나와 있다 . 이런 형식은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 등 당시 대서사 시인들이 쓰던 방식이다 . 끝날 때 까지 이런 식으로 죽 진행되니 다 읽기는 싫고 그렇다고 무언가 알고는 싶은 게으른 독자라면 주제만 따로 읽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다 .

▲ 사탄은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아니 천사다. 아니 악마다. 그가 반역을 일으켜 천사와 싸울 때 드러내는 인간적 고뇌는 처절하다. 이브를 유혹해 사과를 먹일 때도 그렇다.
▲ 사탄은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아니 천사다. 아니 악마다. 그가 반역을 일으켜 천사와 싸울 때 드러내는 인간적 고뇌는 처절하다. 이브를 유혹해 사과를 먹일 때도 그렇다.

그렇게 하면 한 시간 안짝에 <실낙원 >을 독파할 수 있다 . 추천할 만한 독서법은 아니지만 따로 정해진 것이 없으니 맛보기만 원하면 그 방법도 하나의 선택지가 되겠다 .

이런 시답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 것은 이 작품을 읽어 내는 데는 일종의 인내심 같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책의 페이지마다 설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독교나 성경에 능통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으로 많다 . 본문은 생략하고 짧게 끊어치는데 부연 설명 같은 것이 없어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수도 부지기수다 .

번역이 충실하다고는 하나 원본을 벗어날 수 없으니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그래서 편법을 원하는 사람에게 틈을 주고 싶었다 . 이런 식으로 12 권까지 읽으면 대략 600 페이지를 넘긴 셈이다 .

: 신과 인간이 등장하는 책은 늘 존재와 무와 선과 악과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

신이 인간인 아담을 만들었다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는 지금까지 받은 온갖 고통에 대해 그에게 불평의 소리를 할 수 있다 . 아담을 유혹한 이브에게도 마찬가지로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 .

그러나 그렇게 했다는 사람을 해외토픽에서도 보지 못했다 .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게 했다고 시비 걸 생각이 없는 태생이 착한 인류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

여기서 가벼운 질문 하나 하고 넘어가면 신은 사탄의 유혹에 이브가 넘어갈 것을 알고 있었다 . 모든 것을 아는 신이니 당연하다 . 그러면 왜 그 전에 막지 않았는지 따지고 싶다 .

막았다면 원죄도 없다 . 죄 주고 낙원에서 추방하고 구원하고 하는 일련의 복잡한 행동이 부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 이런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수천 년 동안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이니 그만 집어치우자 .

끝내기에 앞서 사탄이 왜 사탄의 길로 빠졌는지, 빠져서도 왜 번민과 고민을 거듭하는지 잠깐 살펴보자 . 사탄이 원래부터 사탄이었던 것은 아니다 . 그도 다른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강 같은 평화를 구가하는 착한 천사였다 .

그런데 어느 날 신이 천사들 앞에 나와서는 나의 독생자를 낳았으니 너희들의 머리로 임명한다고 선언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가 커서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도 판단하기도 전에 우두머리에 앉혀 놓았다 . 재벌의 대물림도 아니잖는가.

계급의 맨 위 , 서열 꼭대기에 앉혀 놓고 무릎 꿇으라고 하니 아무리 착한 천사라고 해도 어안이 벙벙하다 . 그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나에게도 순종하지 않는 자니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 그래도 전능자의 말이니 대개는 기뻐하면서 따르나 다 그렇지는 않다 .

다 그렇지 않은 자들의 우두머리 사탄은 그전까지만 해도 대천사는 아니지만 수석에 속하고 권력 크고 은총 두텁고 탁월했다 . 그가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

자존심이 짓밟히고 모멸감이 끓어 오른다 .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일지라도 다스리는 것을 좋아하는 마왕의 타락은 정해졌다 . 패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꺼지지 않는 증오이며 불타는 복수심과 항복 모르는 용기는 폭군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

사탄을 만든 것은 사탄이 아니라 신이 아닐까 . 잘하고 있는 사탄에게 적개심과 반항심을 심어주고 반역의 씨앗을 뿌렸다 . 굳이 계급이나 서열을 매기고 그에 따른 차별을 한 신의 행동은 정당하고 옳은 것일까 .

더 나아가면 곤란하다 . 이쯤 해서 이것 또한 접어두자 .

타락 천사와 신이 파견한 천사들의 전투는 긴박감 있게 흐른다 . 대포가 등장하고 유황불이 끓는다 . 누가 이겼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한편 밀턴은 크롬웰의 공화정 지지파였다 . 그 밑에서 라틴어 교사로 활약했다 . 그러나 오지 않으리라고 여겼던 왕정복고가 일어났다 .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그는 아내가 죽고 눈먼 상태에서 딸에게 구술해 구약성서 창세기를 소재로 한 대작 <실락원 > (Paradais Lost)을 남겼다 . 단테의 <신곡 >에 버금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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