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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하기에 좋은 위치에 독립군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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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하기에 좋은 위치에 독립군들이 모여들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13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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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은 맞아떨어졌다. 병원 복도에서 그는 팔에 붕대를 감은 건장한 청년을 보았다. 앞이 아닌 뒤만으로도 그가 토벌대 부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먼 이국땅에서 나라 잃은 같은 조선인끼리 힘을 합치지 못하고 갈라치기 한 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흰 옷 입은 사람을 보자 호석 아버지는 잠깐 동정심 같은 것이 일었다.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가 어쩔 수 없었듯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호석 아버지는 처치하기에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피로 물들인 복도를 치우는 수고를 병원 관계자들이 지는 것은 마땅치 않았다.

나야 쏘고 나서 도망치면 그뿐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죄가 없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그가 나오는 것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뒤따라 나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방심하고 있는 그의 심장에 갈기고 도심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면 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석 아버지는 품속에서 떨고 있는 총신의 묵직한 무게감으로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밖은 더웠고 병원 안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팔월 말의 간도는 조선 하늘의 팔월 만큼이나 후텁지근했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열기는 막을 수 없었다. 비는 오지 않았으나 오려는 듯이 습한 기운이 남쪽에서부터 불어왔다.

토벌대 부대장과 복도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가 서 있는 곳으로 부대장이 앞으로 가던 몸을 돌리고 뒤로 걸어왔기 때문에 호석 아버지도 가만히 있기보다는 그가 왔던 쪽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성한 손에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면서 비틀거리며 토벌대 부대장이 다가왔다. 수척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안보는 척 하면서 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시야의 각도에 그가 들어왔다.

호석 아버지는 그대로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눈치 볼 것 없이 품 안의 총을 꺼내 들었다. 죽이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 같은 것을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결정하고 실행하는 몫은 모두 자신의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네가 누구냐, 네 죄를 알겠느냐고 호통치지 않았다. 그것은 관객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대사지 실제 상황과는 맞지 않았다. 등에 총알을 박는 것이 비신사라는 것 역시 서부극에서나 통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간도 아닌가. 간도에서는 간도의 법을 따라야 한다.

호석 아버지는 그가 스쳐 지나갈 때 창백한 얼굴에 지친 기색을 확인했다. 병자의 모습으로 어렵게 걷는 그를 그는 측은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측은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토벌대가 아니고 독립군이었다.

그는 토벌대라고 짧게 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가 돌아섰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이름만큼이나 친숙한 이름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돌아섰다.

자신이 부른 자에 해당한다고 믿었다.

돌아선 얼굴에 그는 총알을 박아 넣었다. 총소리보다 먼저 피가 튀었다고 호석 아버지는 생각했다. 쓰러지면서 그는 독립군 아새끼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말은 겨우 들렸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두렵거나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말을 한 자가 고춧가루 주전자 물을 들이 붓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문자의 위엄을 확인하는 단어가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 그는 더 이상 갑이 아닌 을이었다. 그 을이 한 마디를 보탰다.

이 쌍노무 독립군 아새끼.

이 정도는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호석 아버지는 그 말에 더 화가 나서 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쓰러진 자를 향해 한 발 더 발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딸깍 소리만 났을 뿐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똑같이 무릎꿇리고 고문하고 나무에 매달고 가죽을 벗기고 침을 뱉고 군용 휘발유 통을 들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죽음의 방식에 있어서는 토벌대와 독립군의 처리가 달랐다. 그들은 시간이 있었고 독립군은 없었다. 일본이 패망했어도 아직은 달라지기 보다는 이전의 법칙이 적용됐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부러진 뼈가 붙기도 전에 꿰맨 자리의 부기가 빠지기도 전에 그는 총알을 받고 쓰러졌다. 쓰러질 때 그는 일본군 대좌를 떠올렸다.

그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그가 필요했다. 그는 천황폐하를 입 속으로 불렀다. 아직 죽지 않고 설죽은 상태였다.

모닥불위의 뱀처럼 그가 몸을 꿈틀거렸다. 호석 아버지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놀라 쳐다보고 있는 간호원과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는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쪽으로 몸을 돌렸다.

잘못한 사람처럼 도망치지 않았다는 소문을 내기 위해 그는 달리지 않고 걸었다. 숙이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두르지 않았으나 결코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더 쏘기보다는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는 순서였다. 그는 거스리지 않고 순서를 따랐다. 아직 해가 지려면 두 어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그는 손을 씻고 이용원에 들러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벼운 상의 하나를 길거리에서 사서 갈아입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멀찍이 떨어져 혹시 누가 미행하고 있지 않은지 살폈다. 대원들은 속속 모여들었고 그들은 아직 토벌대 부대장의 사망 소식을 알지 못했다.

다만 모이는 장소에 오면서 철수하는 일본 헌병대 사이에서 누군가가 조선인 토벌대장에게 총을 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부대원들을 수습했다. 자신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윗옷을 바꿔 입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해야 할 토벌대 잔당의 처리가 남아 있었다.

잔당들은 공개적으로 해산식을 하기로 했다. 간 큰 자들이었다.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아직도 대일본 제국의 병사로 착각하고 있었다. 해단식 장을 기습해 토벌대를 토벌하고 귀국하는 것이 독립군의 마지막 임무였다.

그들은 모여서 토벌대장이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그들은 일본 군가를 부르면서 흥을 돋구었다. 독립군들이 사격하기 좋은 위치에 도착했다.

그들은 호석 아버지가 손을 드는 것을 신호로  조선인 토벌대의 앞과 뒤에서 마구 총질을 해댔다. 팔 명의 대원이 삼십삼 명이 모인 토벌대를 죽이는 데는 1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미련하게도 무장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으니 총은 필요 없다고 모두 팔아서 지갑에 넣었다. 해단식이 끝나면 그 돈으로 취하도록 밤 새 먹으려는 의도였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토벌대에게도 적용됐다.

그들은 감히 독립군이 간도 토벌대의 해단식에 총질을 해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몰살당했다. 독립군 대원들이 손을 털고 밖으로 나오니 해는 어둠 속에 몸을 감추어 그들이 그 속에 숨기에 적당한 모양을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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