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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는 앞으로 쓰러지면서 익숙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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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는 앞으로 쓰러지면서 익숙말을 내뱉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1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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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반쯤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꺼낼 때는 나지 않던 소리가 집어넣을 때 딸깍,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무릎을 꿇었던 토벌대 대장은 고개를 들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애처롭게 일본군 대좌를 쳐바봤다.

정말로 목을 쳐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대좌는 알지 못해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다만 다시 칼집을 들었다 올렸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 오른손으로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무언가 하겠다는 결심이 선 동작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냈기 때문에 다 꺼낼 때까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기름칠이 잘 된 톱니바퀴처럼 서서히 움직이고 있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릎 꿇은 토벌대 대장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들고 이전과 같은 헷갈리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대좌는 대장의 숙인 고개에 일본을 상징하는 사쿠라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이자는 대장이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그런 의문은 맞았다.

대장의 목 뒤는 사쿠라가 아닌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좌는 그 자의 목 뒤에 일장기가 그려져 있더라는 말을 부하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대장의 목 뒤와 지금 엎드려 있는 대장이라고 하는 자의 목 뒤가 다른 것을 알았다.

그는 정말로 죽고 싶으냐, 라고 묻는 대신 네 대장은 어디 갔느냐고 짜증 나듯이 물었다.

대장은 고개를 들고 대장은 토벌이 아직 끝나지 않아 마저 토벌하고 복귀하느라고 늦는다고 말했다. 자신은 대장 다음가는 부대장이나 문지기가 대장으로 잘못 소개한 모양이라고 얼버무렸다.

대장이 없는 사이에 자신이 대장이라고 뻐기고 싶었던 부대장을 보면서 일본군 대좌는 조센징은 어쩔 수 없어 하고 혀를 찼다. 그는 꺼낸 일본도를 집어넣지 않고 허공을 향해 한 번 휙 하고 가로질렀다.

고개를 들고 숙이지 않았던 부대장은 칼끝에 이는 바람에 그만 기겁을 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전투에서 많은 독립군을 사살했고 고문했던 잔인한 그도 자신의 눈앞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일본도의 움직임에 몸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그는 하지 않아도 될 괜한 부탁을 한듯 싶어 이번에는 살아서 조국에 돌아가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말을 바꾼 것에 대해 그는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두 어 차례 조아렸다.

대좌가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그 뜻을 알고는 크게 웃었다.

네 조국이 일본이냐.

토벌대 부대장은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대답을 미루고 머리를 굴렸다.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 패망한 것이 화가 나서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물어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나 오래 생각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제 조국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하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일본어였지만 발음도 정확하고 높낮이도 틀림이 없어 대좌는 확실히 알아 들었다.

부대장은 그사이 일본말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에 정말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대좌는 몇 걸음 뒤로 갔다. 그리고 일본도를 부대장을 향해 겨눴다. 마치 대련 상대인 것처럼 날을 옆으로 뉘고 찌를 자세를 취했다.

부대장이 찔릴 것 같아 몸을 뒤로 빼면서 제 조국은 일본입니다, 하고 한 번 더 외쳤다.

조국과 일본을 말할 때 그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애국심 같은 것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 그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었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번의 목소리는 전처럼 정확하지 않았다. 부대장이 떨고 있었다. 그는 대좌가 잠시 미쳐 자신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개죽음이라고 그는 생각했고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좌는 옆으로 뉜 칼을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세웠다. 찌르기보다 자르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자르기 위해 대장이 그러기 전에 기합을 넣었다.

이 야야야 얍.

그리고 그 소리에 놀라 목을 들었던 토벌대 부대장을 향해 한 발 전진하면서 그대로 들었던 것을 아래로 내리쳤다. 순식간이라기보다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살려달라는 어제와 오늘의 동지를 그렇게 하지 않고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대장은 바로 죽지 않았다. 그도 산전수전 겪은 인물이라 단번에 칼 한 번으로 목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몸을 옆으로 비켰는데 칼날의 중앙은 피했으나 칼끝까지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곧 어깨에서 아래로 끈적거리면 무언가 흘러가고 있음을 알았다. 폭포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느릿느릿 그러나 확실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깨가 나갔는지 덜렁거린다는 느낌까지 받았을 때 그는 대좌가 우군이 아닌 적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너무 늦게 알았으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는 온전한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대좌가 다시 일본도를 겨누면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이번에는 소리 지를 새도 없이 두 번째 공격이 가해졌다.

이번에는 총이 칼보다 빨랐다. 대좌는 목에 피를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일자로 몸을 바닥에 부딪치면서 익숙한 말을 내뱉었다.

천황폐하 만세.

그가 죽고 나서 진짜 토벌대 대장이 들이닥쳤다. 그가 앞으로 오면서 죽은 대좌를 살피고 부대장을 살폈다.

살피는 그를 부대장은 가만히 두지 않고 대좌에게 했던 것처럼 권총을 발사해 그를 대좌처럼 한 방에 죽였다. 대장이 없는 세상에서 부대장은 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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