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0-09-30 11:40 (수)
그는 허리에 찬 일본도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상태바
그는 허리에 찬 일본도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10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게릴라 전을 준비하던 독립군은 간도의 어느 초라한 토굴 속에서 조선의 독립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그들은 잘못 들은 것으로 알고 자신들의 귀를 손으로 만졌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하는 행동을 독립군들도 따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다. 누군가 작전을 교란하기 위해 꾸민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도 원하던 것이 손에 잡혔으나 독립군들은 바로 뛰쳐나와 독립만세를 부르기보다 잠시 허탈했다. 무언가 묵은 것이 빠져나가는데 개운하기보다는 빼앗겼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기분 알 것이다. 오래 준비해서 시험에 대비했으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일 년간 연기되거나 폐지됐을 때 오는 그런 기분말이다.

이럴 때는 바로 행동에 나서기보다 상황 파악이 먼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절차다.

토굴 속의 독립군은 서로 얼굴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결론의 과정이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모여 앉은 그들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토벌대에 쫓기는 독립군 신세였다.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때 이럴 필요 없잖소, 하고 말했다.

밖으로 나갑시다.

그들은 이 한마디에 숨어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그들은 손가리개로 얼굴을 가렸다. 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후의 햇볕이 눈에 부셨기 때문이다.

토굴 속에서 땀 흘렸던 그들은 나오는 순서대로 토방의 마루에 걸터앉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여름의 한가운데 였고 곧 가을이 다가올 징조였다.

그들은 토굴 속에서처럼 서로 마주 보았다. 오래만이었다. 대명천지 밝은 대낮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들은 역시 오랜만에 웃었다.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그들은 서로를 보면서 또다시 웃었다. 서로 상대의 모습을 이처럼 오래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덥수룩한 수염, 움푹 들어간 눈, 뛰어나온 광대뼈, 산도둑이 따로 없었다.

옷은 해지고 누렇게 변해 있었으나 흰옷은 흰옷이었고 그들은 흰 옷을 즐겨 입는 영락 없는 조선인들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그들이 모처럼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합격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이 연기됐기 때문에 얻는 일종의 시간벌이 같은 것이었다.

시험공부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뭐시여.

그 한마디에 그들은 미소에 소리를 더했다. 웃음 소리가 토방 마루를 타고 닫힌 문지방을 넘어 안방으로 타고 들었다.

웃고 나서 그들은 다시 허탈했다.

변변히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해보지 못하고 맞은 독립이어서 독립군들은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을 지킬 힘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허락 없이 온 독립 앞에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새가 알에서 나올 때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채듯이 날개를 펴기 전에 부들부들 떨면서 사방에서 적들이 진군하지 못하기만을 빌었다. 웃음은 금새 공포로 변했다.

새끼 새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들도 따라했다. 적이 없어 햇볕에 털이 마르고 스스로 걷고 날 수 있을 때까지 적들은 다가오지 말아야 했다. 다가온 적이 있다면 공격 대신 후퇴해야 했다.

새끼 새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신 뒤에서 누군가가 덮치면 달려들려고 발톱을 세우고 있는 어미 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개의 혀를 맞대놓고 쉬익, 쉬익 소리내는 뱀을 물리칠 어미 새를 독립군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새끼 새에 있는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으므로 있는 것만 못했다. 어미 새만큼 든든한 후원군이 간도 지방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 독립군들은 토방에서 오돌오돌 떨었다.

독립군은 새끼 새만도 못한 존재였다. 임시정부는 그들 한 몸을 챙기기에도 벅찼다. 감당할 수없는 일이 갑자기 터지자 임정 관계자들은 독립군보다 더 떨면서 차라리 토벌대와 전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럴수는 없다.

독립군 대장이 거칠게 뱉어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이 땅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럴수는 없다.

그는 한 번 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특공대의 폭파 작전은 폐기됐다. 연기가 아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늘 할 일이 내일로 미뤄진 것이 아니다. 아예 없어진 작전 앞에서 독립군 대장은 동료를 잃은 것처럼 망연자실했다.

현장에서 즉시 철수하라.

명령을 내려놓고 그는 내린 명령을 후회했다. 미군의 명령은 수령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수령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현장의 특공대에서 공격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도망치는 적들의 등뒤에 기총사격을 가해 독립군의 위엄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했다. 이제는 늦었다.

그들을 교육했던 미군이 그들이 다른 행동에 나서기 전에 무장을 해제했다. 그 소식도 알지 못하고 임시정부의 대장은 즉시 철수라라는 명령에 따라 철수하시오 한마디 하고는 그것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국모를 잃을 때 보다 더 슬펐다.

떠내려가는 지붕 위의 새끼 밴 암소를 보고도 더 센 물이 밀려오기 때문에 바라만 보고 있는 농부의 심정으로 대장은 다시 땅을 쳤다. 사태의 심각성은 곧 그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우두머리 회의를 주재하고 하루빨리 귀국해야 한다고 동료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결과가 나오자 그는 서둘러 그러기 위해 미군에게 매달렸다.

상해서 걸어서 조선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들은 비행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요구를 받은 미군은 그러기를 거부했다.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돌아갈 것을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없는 정부를 세우려던 그들의 계획은 이것으로 끝장났다.

그 소식은 토방 위의 독립군 잔당들에게도 전달됐다. 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임정을 따라 귀국하려던 계획은 뒤로 미뤄졌다. 대신 그들은 귀국하기 전에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한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을 좁혀 나갔다.

토벌대장을 잡자.

독립군 대장의 두 번째로 높은 지위에 있던 호석 아버지의 이 말은 호소력이 있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 독립된 마당이니 이제 용서하자고 하느님의 설교를 말하는 동료는 없었다.

용서는 토벌대장의 악랄함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가 사람이라면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배를 다리로 하면서 기어다니는 뱀만도 못한 존재였다.

토벌대를 토벌하지는 못해도 대장만큼은 잡아서 죽이리라고 모여 있던 그들은 이를 갈았고 이를 간 다음에는 결심이 흩어지지 않도록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이에는 이였다.

그가 삼족을 멸했으면 우리도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한 예의였다. 흰옷 입은 조선인은 예의에 밝은 민족이었기에 그들은 비록 죽은 자의 예의였으나 예의를 지켜야 했다.

호석 아버지는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귀국하라는 임정의 명령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이유 때문에 한 달 정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즉시 무장 해제하라는 명령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신했다. 그러나 답신은 거짓말이었다. 처음으로 호석 아버지는 임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토방에 앉아 있던 동료 13명 가운데 다섯명이 가족이 보고 싶다고 그들 곁에서 멀어졌다. 그들이 멀어지기 전에 호석 아버지는 그가 가지고 있던 군자금 중의 일부를 나눠 주면서 함께 귀국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서울에서 만나 막걸리 한 잔 찌끌이자.

호석 아버지는 유쾌하게 지껄이고 나서 남은 8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마을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군복 대신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토벌대 대장이 조선인들 틈에 끼여 귀국하는 현장에 잠복했다.

그 무렵 토벌대도 조선의 독립 소식을 듣고 알았다. 그들은 독립군보다 더 놀랐다. 당연히 오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조선 독립이 오자 당황한 그들은 자신의 조국이라고 믿었던 일본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조상의 묘가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야 할지 망설였다.

토벌대장은 당연히 일본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원들에게 일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고 짐을 꾸리라고 명령했다. 비록 패잔병일지라도 조국 일본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을 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일본에서 조국 건설을 위한 또 다른 야망이 일었다.

그래서 비록 졌어도 이긴 것처럼 당당했다. 가서 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일은 슬픔에 젖은 일본인들의 위로를 넘어 새로운 대일본 제국의 탄생에 대한 밀알이 그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토벌대장은 일본군 대좌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 점을 토벌대장은 상기시켰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연히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애국심이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대가 전투에서 보인 혁혁한 공을 설명했다. 다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들어서 우리를 잊지 말라는 다짐이었다. 덧붙여 우리의 세력은 여전한데 너무 분하고 슬프다고 흐느켰다.

그러나 대좌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귀찮은 토벌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느라고 일그러져 있었다. 토벌대장은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찌그러지는 것은 패전에 대한 자책이라고 여기고 잘못은 자기에게 있으니 처벌해 달라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 잘못입니다, 죽여 주십시오.

일본군 대좌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사랑하는 이 조센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대좌는 잠시 주춤거렸다.

대좌는 그가 그렇게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돌아가서 자신이 어떤 변명을 하고 아니면 어떤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어떻게 행동에 옮겨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는 허리에 찬 일본도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