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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5-16 12:55 (월)
그들은 조선말로 욕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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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조선말로 욕을 해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0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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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직접 독려를 받는 토벌대와 애국심 하나만으로 대드는 독립군은 애초 싸움 대상이 아니었다. 슈퍼 헤비급과 라이트 플라이급이 맞붙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나 독립군은 헤진 글로브를 끼고 마우스 피스도 없이 링에 올랐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챔피언이 보기에 애송이였고 주먹을 쓰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싸우지 않을테니 내려가라고 눈짓을 해보는 것은 도전자에 대한 아량이 아니라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깡충깡충 까불어 대니 가벼운 스트레이트 한방으로 케이오시키고 만다. 그러나 넘어졌던 그는 다시 일어났고 코피를 흘리면서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종로에서 뺨맛고 한강에서 눈 흘기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퍼컷으로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갈겨댔다. 과연 매서운 주먹이었고 독립군은 토벌대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됐다. 뻗어서 들것에 실려 나간 독립군은 여러 날 고생했다.

생사를 넘나들다 기적적으로 깨어나면 글로브에 깨진 유리 조각을 넣고 다음 대결을 기다렸다. 독립군은 이런 수준이었다. 모든 것이 토벌대에 열세였다.

수적으로도 그렇고 가지고 있는 무기로도 그랬다. 전투복 등 보급품이며 식량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링에 오르기보다는 링 아래서 기회를 노렸다. 방법을 바꾼 것이다.

링에 올라가기보다는 올라 오라고 손짓해도 모른 척 일부러 피했다.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기에 게릴라 전술이나 매복 공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상책이었다. 다른 꾀는 없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에게는 숨거나 도망쳐야 한다. 독립군의 대장도 그렇게 피신해 온 자들을 벌하기보다는 안전한 곳에 숨겨 주면서 못했다고 화를 내기보다는 쉬었다 가자고 다독였다.

그도 토벌대를 향해 직접 싸운 적이 있기 때문에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대장은 도망친 자를 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떨어진 눈물이 안긴 자의 등을 타고 흘렀으나 그는 알지 못했고 대장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호석 아버지는 그렇게 피신해서 대장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품을 떠날 때 그날 본 것을 독립군 대장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홀로 도망친 것이 부끄러워 한동안 말하지 못하고 몸만 떨었다. 나중에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던 것을 말해야 할지 두려워서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이 독립군 사령부의 떨어진 사기를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전황은 어땠소.

대장은 호석 아버지가 조금 진정이 됐다고 판단하자 이렇게 물었다. 호석 아버지는 본 것은 모두 말해야 다음 작전에 도움이 될 것 같기에 대장과 둘만이 있자 겨우 입을 열었다.

동시에 호석 아버지는 입을 손으로 가져가 막았다. 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벗겨진 껍질, 꿈틀대는 붉은 고깃덩어리, 휘발유 뿌린 시체에서 타는 냄새.

호석 아버지는 말하다가 꺽, 꺽 흐느켜 울었다. 말은 말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까지 소환했다.

토벌대는 사살한 독립군의 시체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석유를 붓고 불태웠다. 검게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그들은 손을 들고 독립 만세가 아닌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 불렀다.

포로로 잡은 산 사람은 나무에 매달아 놓고 껍질을 벗겼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와 함께 묶었다. 그렇게 해야 포를 뜨기 쉬웠다.

토벌대는 돌아가면서 벗긴 껍질 위에 침을 뱉었다. 죽어가는 독립군은 차라리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면 했다. 일본말로 지껄였다면 덜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과 같은 조선말을 했다.

조센징의 씨를 말리자.

악을 쓰면서 아직 도려내지 않은 살이 있으면 찾아내서 그쪽으로 칼끝을 돌렸다.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던 그들은 그 썼던 글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내서 입 밖으로 뱉어냈다. 증오의 광기가 눈보다 입에서 먼저 튀어 나왔다.

얼굴 껍질이 다 벗겨져도 독립군은 그때까지 숨을 쉬며 살아 있었다. 처음에는 비명을 질렀으나 나중에는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 나간 독립군에게 토벌대는 찬물을 뿌렸다.

물을 맞은, 얼굴에 있던 눈은 뜨지 못하고 감은 체 고개만 잠시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마치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 번에 벗겨진 뱀이 살아 있을 때처럼 그렇게 몇 번 꼼지락댔다.

토벌대는 지독한 조센징 놈이라고 조선말로 한 번 더 외치면서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기분이 언짢아서 돌아섰다.

토벌대의 대장과 독립군의 사령관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 그들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의병에 참여했으며 왜구와 맞서 함께 싸웠다. 그러다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속국으로 만들어 버리자 영원히 그렇게 갈 것으로 믿었던 사람은 토벌대에 몸을 맡겼다.

뺏긴 내 나라를 찾겠다는 사람은 자기 돈을 털어가며 걷고 또 걸어서 상해 임시정부를 찾았다. 올 것 같지 않던 독립이 왔다. 토벌대원들은 그들을 고용한 일본으로 가지 않고 독립군과 함께 조선으로 왔다. 고국은 일본이 아닌 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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